의원 6명에 「정치적 파산」선고/민자 「재산공개 파문」매듭 안팎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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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돈·권력중 택일”… 의식개혁 계기/정확한 실사 안거쳐 비판론도
민자당의 재산공개 파문이 30일 박준규국회의장 등 6명 의원에게 「정치적 파산」선고를 내리고 매듭지어졌다.
김영삼대통령이 최우선적으로 강조하는 정치개혁 차원에서 이뤄진 이번 재산공개는 예상외의 엄청난 파장을 초래,결국 다수정치인들을 숙정하는 「무혈혁명」으로 귀결됐다. 이에따라 권력을 치부의 수단으로 삼아서는 큰 낭패를 볼 수 밖에 없다는 의식이 정치권에 정착될 계기를 마련했다.
○…민자당은 그동안 시내 H호텔에서 비밀리에 진행됐던 재산 실사작업을 모두 끝내고 30일 오후 의원직 사퇴 및 공개·비공개 경고 등 조치결과를 발표키로 입장을 정리.
이미 의원직사퇴·탈당선언 등으로 거취표명을 한 의원외에 공개경고 대상자로는 금진호·남평우·서정화의원 등이 지목됐으며 이밖에 정호용·김영진의원중 1명 또는 2명 모두 추가로 거론.
비공개 경고를 받을 대상으로는 박규식·김인영·정영훈·이영창·이승윤·박세직의원 등이 꼽히고 있다. 이밖에 김진재·김동권·이승무·최돈웅의원 등 사업체를 가진 부자의원들은 「단순축재」정도로 분류돼 조치대상에서 제외.
최형우사무총장은 30일 공개경고의 의미에 대해 『경고 그 자체에 의미가 있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고 의미를 축소. 그러나 한 고위당직자는 『말이 경고지 공개경고는 사실상 정치적인 사형선고』라고 분위기를 설명했다.
최 총장은 경고를 받은 의원들이 당직·국회직을 내놓아야 할지의 문제에 대해 『그건 다음에 보자』고 넘겼다.
○…정계은퇴를 선언한 김재순의원의 경우 깨끗한 퇴진에 동정론·정상참작론까지 있어 사법처리 등 후속조치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김 의원은 특위조사 과정에서 공개된 내용보다 많은 재산이 적발돼 도저히 그냥 넘어갈 수 없었다는 후문이다.
그러나 김 의원은 지난해 민자당후보 경선과정에서 김영삼 당시 후보를 한고조 유방에 비유,「덕의 정치인」으로 치켜세우며 적극 뛰었던 점이 고려되지 않을 수 없었다. 특위측은 이같은 정상때문에 공식화 여부를 고민해오다 김 대통령의 결심을 얻어 최형우사무총장이 직접 「결단」을 권유하는 예우를 갖추기로 결론을 내렸다.
최 총장은 28일 밤 부산에서 상경한뒤 김 의원을 만나 이같은 입장을 전달했으며 김 의원은 깨끗이 수용. 김 의원은 김 대통령을 유방에 비유했던 자신의 노력을 개국공신 한신의 충절에 빗대어 「토사구팽」이라고 유감을 표시했으나 결국 자진사퇴했다.
김 의원은 29일 자신이 직접 토사구팽이라고 감회를 표현한 문안을 정리해 보좌관에게 발표를 지시한뒤 광주 별장에 칩거중이다.
○…박준규의장의 탈당은 당 수뇌부의 사전양해설과 반발설이 엇갈리는 가운데 비난의 목소리가 끊이지 않고있어 그 결과까지 주목된다.
박 의장의 경우는 재산공개직후부터 과다한 부동산 소유의 대표적 인물로 지목돼 왔기에 거듭되는 사퇴권유를 받아왔으나 일단 외형상 여론과 당의 입장을 거스르는 변칙수로 난국탈출을 노린 셈이다.
사전양해설은 박 의장이 자신의 입장을 역사의 기록으로 남기는 절차(국회본회의에서의 신상발언)를 강조해 왔기에 『국회가 열릴 경우 신상발언을 통해 의장직뿐 아니라 의원직까지 사퇴하지 않겠느냐』는 기대성이기도 하다.
반발설은 박 의장이 권해옥특위위원장의 방문 등 설득작업에 『투기나 탈세를 하지 않았다. 8선의원의 명예를 투기꾼으로 마감할 수 없다』는 등 「의원직만은 고수」입장을 여러차례 밝혀왔다는데 근거한다.
당 일각에서는 박 의장이 버티기를 계속할 경우 민정계 일부 의원과 야당의 동조로 의장직 사퇴표결에 영향을 주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일부에서는 이같은 가능성에 대해 『사법처리로 쐐기를 박아야 한다』는 강경론도 없지 않으나 대부분은 『여론이라는 대세를 거스르면서 박 의장의 의장직 사퇴까지 반대할 사람은 없다』며 「대세론」을 강조.
○…임춘원의원은 박 의장과는 달리 반발탈당한 것은 아니라는 관측이다.
임 의원은 세림군산 관광호텔을 세림의료재단에 기증하는 등 일부 재산의 「사회환원」선언으로 납작 엎드리는 자세를 보였다.
임 의원이 이처럼 저자세를 취한데는 김문기의원에 대한 정부의 신속한 사법처리 방침을 감지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반면 정동호의원은 30일 오전까지도 버티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29일 오후 정 의원의 육사동기인 민태구특위위원이 그를 접촉,의원직 사퇴를 권유했으나 『나보다 더한 사람도 있는데 왜 나만 못살게 구느냐』고 완강히 저항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당은 이에따라 당기위원회 소집→출당이란 경고카드까지 제시했으나 정 의원은 오히려 박 의장식 모범답안인 탈당을 검토하고 있다는 것이다.
당은 정 의원이 반발의 도를 높여가자 30일 『만일 인내의 임계점을 넘길 경우 앞으로 정부가 알아서 처리할 것』이라는 최후통첩을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재산공개 파문 처리가 「무혈혁명」으로 평가받고 있음에도 몇가지 문제점이 지적되고 있다.
우선 문제인물들에 대한 제반 징계조치가 과연 정확한 실사를 바탕으로 한 객관적인 기준에 따라 이뤄졌느냐는 점이다.
그동안 특위조사 과정에서 상당히 많은 재산을 누락시킨 사람들이 여럿 발견됐음에도 이들이 언론의 추적대상에서 제외됐었다는 이유로 구제받은 것은 불공평하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따라서 이번에 징계를 당한 의원들은 그 조치에 흔쾌히 따르고 반성하기 보다는 여론재판을 당해 억울하다는 감정을 갖기 쉬울 것이다.
또 사업을 하는 의원들의 경우 『원래 돈이 많으므로 큰 문제가 안된다』며 징계대상에서 거의 배제했는데 과연 그들의 축재과정을 제대로 따졌는지 의문이다.
면죄부를 받은 사업가들중에서도 부동산이 부의 바탕이 돼 투기의혹을 충분히 받을만한 사람들이 있다는 지적도 있다.<노재현·오병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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