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폭동도 현실감 있게 옮겨 강수연-정보석의 연기 돋보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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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미국 이민 한인가정이 유색소수민족으로서 겪는 고통을 밀도있게 그린 장길수감독의 영화『웨스턴 애비뉴』가 다음주 관객과 만나게 된다.
장감독은 데뷔작『밤의 열기속으로』(85년)에서는「반미촌」이태원을 무대로, 세 번째 작 『아메리카 아메리카』(88년)에서는 미국으로 이민간 한국교포간의 문제를 소재로 미국이란 존재가 한국인에게 끼친직· 간접의 영향을 살폈었다.
또『밤의…』『아메리카…』와는 시각이 다르나 2류 멜러『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90년)에서는「미국병」에 걸린 여자의 방종을 그렸고, 『은마는 오지 않는다』(91년)에서는 미군에 겁탈당한 여인이 미군 위안부로 전락하는 과정을 그려 미국에 대한 관심이 지속적임을 보였었다.
그러므로『웨스턴…』는 장감독의 대미 관심사 정도가 더욱 넓고 깊게 반영된 영화라고 볼수 있다.
『아메리카…』를 제외한 앞서의 영화가 한국내 미국문제(『은마…』의 경우 집단에 의한 개인의 소외가 주제)를 다룬 것과는 거꾸로『웨스턴…』는 미국인이 되고자 태평양을 건너간 한국인이 겪는 간난을 담았다.
눈에 확실치 보이지는 않으나 백인사회로의 편입을 완강하게 차단하고 있는 이른바「유리의 벽」, 흑인들의 피해의식에 따른 배척, 그리고 성장과정이 다른 한인 1세대· 2세대간의 언어· 사고· 행동양식의 차이에 따른 가족내 갈등등은 미국내 한인 시민들이 다함께 느끼는 고통이다.
『웨스턴…』는 이러한 문제에 대해 지난해 발생한 LA한인촌 흑인폭동이라는 불행하기 짝이 없는 사건까지 스크린에 리얼하게 재현하며 성실히 접근하고 있다.
웨스턴 애비뉴는 LA코리아 타운을 관통하는 중심도로 이름. 거기에서 슈퍼마킷을 경영하는 창익부부(자니 윤· 박정자분)와 그들의 아들 바비(정보석분), 딸 메리엔(강수연분)가족의 삶과 죽음의 이야기를 메리엔의 고통스런 좌절을 중심으로 보여준다.
풍성한 볼거리-영화속의 영화『에그조틱』, 강수연의 보디페인팅, 풍물관광 수준을 벗어난 뉴욕· LA 뒷거리, 실감나는 LA폭동-와 빠른 커팅이 어울려 영화보는 재미를 맛보게 한다.
그러나 이 영화는 그 성실성에도 불구하고 뉴욕부분(메리엔의 좌절)과 LA부분(흑인폭동) 이 따로 놀아 영화의 통일된 힘을 떨어뜨리고 있는데 그것은 영화가 메리엔을 축으로 전개되다 LA에서 가족전체의 이야기로 퍼져 버렸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강수연은 여전히 매력적이고 정보석의 터프한 연기가 돋보인다. <이회익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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