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 7가] 투수와 타자, 그리고 놀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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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석기 시대를 상징하는 빗살무늬 토기 바닷가 절벽에 그려진 암각화. 역사의 박물관에서 만나는 이런 유물과 유적을 통해 우리가 발견하는 것은 '일과 놀이'는 본래 하나였다는 사실(史實)입니다. 노동이 곧 예술의 기원인 것입니다. 둘은 시간이 흐르면서 서로 전위되고 끊임없이 상호작용 했습니다. 놀이가 새로운 일을 만들고 일이 새로운 놀이를 창조한 것입니다. 다만 세상이 복잡해지면서 둘은 갈라져 나와 오늘에 이르렀을 따름입니다.

그렇다면 야구 선수들에게 어린 시절 놀이와 지금의 일과는 어떤 상관 관계가 있는 것일까요?

플로리다 말린스의 김병현은 초등학교 때 동네서 첫 손가락에 꼽히는 '물수제비'를 뜨는 소년이었습니다. 동네 앞을 흐르는 광주천에 나가 돌을 한 번 던지면 끝없이 물장구를 일으키며 날아가 그 거리가 다른 아이들의 3배쯤 됐다고 합니다.

촌에서 마땅한 놀이가 없어 심심풀이로 했던 물수제비는 나중에 그의 야구 인생의 전환점이 되는 계기까지 됐습니다. 그 누구로부터도 언더핸드로 던지는 것을 배우지 못했지만 그는 "짱돌 하나는 잘 던졌다"는 유년의 기억만으로 충장중 3학년 때 오버핸드에서 지금의 언더핸드로 투구폼을 바꿨습니다. 그리고 그 '짱돌'이 "저런 공을 던지는 선수는 지구를 떠나야 한다"는 극찬을 들으며 현재 한국 선수 중 유일하게 메이저리그에서 건재함을 과시하는 야구 인생의 디딤돌이 됐습니다.

물수제비와 잠수함 피칭은 아주 흡사하기도 합니 다. 옆으로 던지는 것도 그렇고 돌과 공을 잡는 그립도 같습니다.

김병현은 주무기 중 하나인 커브를 습득하는데도 물수제비에서 많은 영감을 얻었습니다. 처음엔 다른 투수들처럼 세 손가락(엄지 검지 중지)으로 던졌으나 잘 안됐다고 합니다. 그래서 엄지와 중지 두 손가락으로 해 봤는데 마음에 쏙 들었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스승없이 독학으로 배운 이 세상에 하나뿐인 그의 '떠오르는' 커브입니다.

김병현이 물수제비라면 얼마 전 메이저리그 올스타전 홈런 더비에서 1위를 차지한 LA 에인절스의 강타자 블라디미리그 게레로는 '라 플레세아'입니다.

게레로는 낮은 볼을 유난히 좋아하는 전형적인 파워 히터입니다. 가장 치기 까다롭다는 무릎에 바짝 붙는 몸쪽 낮은 볼도 엄청난 배트 스피드로 담장을 넘겨 버리고 심지어 원 바운드로 들어오는 공도 골프 스윙하듯 날려 보냅니다. 메이저리그 '스카우팅 노트북'에 따르면 그의 지난 시즌 가운데 낮은 공에 대한 타율은 무려 7할대였습니다.

낮은 공에 대한 그의 가공할 화력도 유년 시절 놀이와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보도에 따르면 도미니카공화국의 고향 마을에서 매일 밤 늦도록 친구들과 막대기를 들고 원 바운드로 들어오는 공을 때리는 '라 플레세아'라는 놀이를 했다는 것입니다. 그 '라 플레세아'가 '낮은 공이라면 물불 가리지 않고' 담장 밖으로 넘기는 오늘의 '무시무시한' 게레로를 탄생시키는 지렛대가 됐습니다.

일과 놀이가 불가분이란 것은 이들에게서만 확인되는 사실이 아닙니다. 캐나다 아이스하키가 그렇게 셀 수 밖에 없는 것은 어려서부터 얼음판에서 놀았기 때문이고 일본 타자들의 정교한 타법은 학교에서 배운 검도에서 비롯됐다는 분석도 있습니다.

요즘처럼 어린이들이 해야 할 것이 많은 시대도 없습니다. 하지만 그들에게 역시 가장 소중한 학습은 마음껏 뛰노는 것이라는 것을 스포츠를 통해서도 알 수 있습니다.

구자겸 USA중앙 스포츠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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