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논술한다] 존엄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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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사람의 생명은 소중하다. 이는 어느 누구도 반박할 수 없는 불가침의 명제다. 따라서 존엄사는 허용돼야 한다. 사람의 생명이 소중하기 때문이다. 모순처럼 들리지만 그렇지 않다. 스스로 그것을 이어나갈 능력을 잃었는데 의료기구에 의지해 이어지는 생명은 더 이상 그 사람 자신의 생명이라 할 수 없다. 부질없이 이어지는 그러한 생은 도리어 행복을 누릴 권리가 있는 생명에 대한 경시다. 가능한 모든 의학적 처방을 다했음에도 불구하고 죽음이 임박했을 때, 환자가 품위있는 임종을 선택할 수 있도록 정중하고 적절한 절차가 정립돼야 한다.

 ② 먼저 존엄사에 대한 부정적인 사회적 인식이 완화될 필요가 있다. 존엄사의 표면만 보고 살인이라 칭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는 옳지 않다. 타인에 의해 생명이 끝나는 것이 윤리적이지 못하다고 하지만 타인에 의해 고통스러운 생명이 연장되는 것 또한 윤리적이라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환자를 위해 최선의 선택을 내리는 의사와 가족을, 존엄사에 대한 바른 인식을 바탕으로 좀 더 부드러운 눈길로 바라볼 수 있어야 하겠다.

 ③ 환자의 상황을 판단하는 의사의 책임의식 또한 중요하다. 존엄사가 대대적으로 허용될 경우 환자를 둘러싼 정치적·경제적 문제가 판단을 내리는 의사에게 압력을 가하는 경우가 생길 수 있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현재처럼 환자의 안위를 첫째로 두는 의사의 자세가 요구된다.

 ④ 제도적 장치도 필요하다. 치료를 계속할 것인지 존엄사를 결정할 것인지 판가름할 수치화된 기준이 마련돼야 할 것이다. 물론 환자 개인의 증상과 상태는 조금씩 다르다. 하지만 존엄사 결정의 시점을 의사가 임의로 판단한다면 그 시기의 미묘한 차이가 법적 논쟁을 불러올 수 있다. 고인 가족의 마음을 두 번 아프게 할 이런 문제는 존엄사 인정의 기준 마련으로 미연에 방지할 수 있다.

 사람의 생명은 그 자신이 원할 때 소중하다. 사람은 자신이 원하는 죽음을 맞이할 권리 또한 가슴 아프지만 갖는 것이다. 존엄사에 대해 부드러운 사회여건이 조성되고 적절한 절차가 마련될 때, 환자는 편안한 마음으로 마지막을 선택할 수 있게 된다. 그들은 고통에서의 자유와 품위 있는 죽음을 보장받음으로써 궁극적으로 더 나은 삶의 질을 선물 받게 될 것이다.  

문호은 (대입 준비생·충남 공주사대부고 졸)

총평과 첨삭

 짧은 문장엔 장점이 많다. 무엇보다 주장을 단순하고 선명하게 만든다. 글의 함축성이 커지며 힘도 실린다. 이 때문에 정치구호·광고카피·신문제목 등도 “짧게 짧게”를 지향한다. 글쓴이는 짧은 문장의 힘을 아는 것 같다.

문장의 길이를 줄이려는 노력이 돋보인다. 그 성과도 있다. 비록 표현이 정교하지 못한 부분도 있지만 중·고등학생의 글에서 흔히 보이는 장황하고 무의미하며 문법적으로도 틀린 문장은 거의 눈에 띄지 않는다. 그 자체만으로도 매우 칭찬할 만하다는 생각이다.

 그러나 이 글은 논제의 핵심을 충분히 다루지 못했다는 느낌을 받는다. ①은 무엇보다 이 글에서 ‘존엄사’의 정의가 규정되지 못했다. 논제에서 막연하게 제시된 존엄사라는 것이 구체적으로 어떤 의미를 갖는 것인지 좀 더 명확한 의미를 부여해야 했다. 그래야 찬반의 입장을 밝히는 다양한 근거를 찾아낼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부분별 첨삭으로 먼저 ①에서 ‘어느’ ‘그것을’ ‘그사람’ ‘그러한’은 없어도 될 말들이다. 오히려 없을 때 문장이 더 자연스럽다. 필요 없는 말의 사용은 흔히 범하는 잘못이다. 특히 대명사나 같은 역할의 형용사·부사 반복은 줄일 수 있는 대로 줄일 것을 권한다.

 ②에서 ‘사회적 인식이 완화될 필요가’ ‘존엄사에 대한 바른 인식을 바탕으로 좀 더 부드러운 눈길로 바라볼 수 있어야 하겠다’는 정교하지 못한 표현이다. ‘완화’보다는 ‘개선’이 나을 듯하다. ‘존엄사에 대한 바른 인식을 바탕으로’라는 말은 ‘존엄사에 대한 의식 전환을 통해’ 정도로 바꾸는 것이 어떨지. ‘부드러운 눈길’은 심하게 어색하다. ‘긍정적 자세’ 혹은 ‘전향적 인식’ 정도가 좋을 것 같다.

 ③에서 ‘대대적’이라는 말이 어색하다. ‘공식적’ ‘법률적’ 혹은 ‘전면적’ 정도가 맞을 듯. 문장 전체도 어색하다. ‘존엄사가 허용된다 하더라도 의사는 환자 가족이나 친지의 반발이나 경제적 문제 등에 의해 합당한 결정을 내리기 어려울 수 있을 것’이라는 표현이 적절한 것 같다.

 ④는 ‘수치화된 기준’이라는 말에 거부감이 든다. 제도적 장치가 마련돼야 한다는 주장까지만 명확한 의미가 느껴지며 그 다음부터는 내용이 막연하다는 느낌이다.

 왕희수 (중앙일보NIE연구소 첨삭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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