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해 말갈족은 고구려 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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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발해의 지배층뿐 아니라 피지배층 다수가 모두 고구려인 이었다는 새로운 주장이 학계에서 제기돼 눈길을 끌고있다. 발해의 지배층은 고구려 유민, 피지배층은 이민족인 말갈인 이라는 것이 지금까지 우리 국사학계의 통설이었다.
경성대 사학과의 한규철 교수는 오는 26일 개최되는 발해사 국제학술회의에 제출한 논문「발해국의 주민구성문제」에서 발해의 말갈인은 이민족이 아니라 바로 고구려인 피지배층을 지칭하는 것이라는 새로운 해석을· 제기했다.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소에서 『발해의 민족형성과 연구사』를 주제로 러시아·중국·일본 등 4개국 학자들을 초청한 이번 학술회의는 26일 오전10시 고려대 인천기념관대강당에서 열린다.
한 교수는 이 논문에서「말갈」은 당·송대 인들이 그들의 동북방, 특히 만주지역 주민들을 낮추어 부르던 이름이나 종족 명으로서는 무의미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우선 흑룡강(흑수) 중하류의 숙신이 남하한 흑수 말갈이 예맥, 옥저등을 한반도로 몰아내고 만주지역에서 번성했다는 말갈족 단일 계통설을 부정하는데서 시작한다.
고조선과 계통을 같이하는 남만주의 숙신족이 별도로 있었으며 이를 계승한 예맥·옥저 등의 주민들은 농경 이상당한 비중을 차지한 이 지역의 특성으로 보아 민족이동이 어려웠을 것이므로 그대로 남아 여러갈래의 말갈로 불리게 됐다는 깃이다.
다시 말해 말갈 7부중 흑수 말갈을 제외하고 발해건국의 주체가 되었던 송화강 유역 주민(속말말갈 ) , 백 두산유역주민(백산 말갈)등은 모두가 고구려 유민이었고 발해국의 주민은 이들 고구려유민이 대부분을 차지했다는 것이다. 한 교수는 문화적으로는 발해의 민간풍속과 난방장치(온돌)가 고구려와 같았다는 점도 종족이 같다는 증거로 보았다.
그는 또 말갈이 고구려인과 다른 이민족이었다면 거란의 남북원 제도와 같은 이민족을 다스리는 특별한 제도가 있어야 할텐데 그런 제도 없이 2백여 년간 유지된 점도 발해의 지배층과 피지배층이 같은 종족이었음을 뒷받침한다고 해석했다.
또한 중국의 정사는 인접한 종족의 언어차이를 자세하게 기술하는 경향을 가지는데『수서』나『구당서』 어디에도 말갈과 고구려, 말갈과 발해의 언어를 비교하여 기록한 것이 전혀 없다는 것은 언어가 같았기 때문에 언급하지 않은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고 한 교수는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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