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색경보(분수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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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일찍부터 세계의 위대한 사상가들은 전쟁과 평화의 개념에 대해 다각도의 고찰을 시도해왔다. 관점과 시각에 따라 그 정의는 여러 갈래로 나뉘지만 최대공약수적인 공통의 흐름은 「무장충돌만이 전쟁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는 점이다. 16세기 영국철학자 토머스 홉스는 「국가간에 싸우려는 의지,곧 적대태도까지도 전쟁상태에 있는 것으로 봐야 한다」고 했다. 오늘날의 「냉전」도 그같은 관점에서 근거한다. 뒤이어 존 로크는 인간들에게,혹은 국가간에 일어나는 분쟁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오직 두가지,즉 법과 힘뿐이라고 주장했다. 법이 존재하지 않는 곳에서는 힘만이 최후의 심판관이 된다는 것이다. 이 말은 곧 평화의 상태를 유지할 수 있는 길은 모든 인류,모든 국가가 법을 준수하는데서 가능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세계의 국가들을 단일정부로 결합시키는 것만이 세계평화를 유지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는 논지를 편 13세기 단테에 이어 18세기 칸트의 주장도 따지고 보면 모든 사람으로 하여금 법과 정의를 지키게 하는 가장 손쉬운 방법이 세계를 하나의 정부아래 묶는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국제무대란 언제나 강자의 권리가 지배하는 무법·무정부 상태만을 야기할 뿐이라고 본 것이다. 그러나 세계 곳곳에서 공산주의 체제가 붕괴되고 냉전상태가 종식돼가는 기미를 보이기 시작하면서 위대한 철학자들의 그같은 견해는 다만 기우에 불과한 것이 아닌가 하는 느낌을 갖게한 것이 사실이었다. 그 느낌들은 아마도 공산주의 최후의 보루라 할 수 있는 김일성체제의 도전적 호전성을 과소평가한 데서 비롯한 것인지도 모른다. 북한이 핵확산금지조약(NPT)탈퇴를 선언한 후 세계 모든 나라들은 온통 북한을 향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영국의 더 타임스지는 「한국에서의 적색경보(Red Alret)」라는 제목의 사설에서 세계에 대한 도발행위라 경고하고 중국 등 관계국가들이 해결에 적극 나설 것을 촉구했다. 붉은 색은 공산주의나 그 혁명을 상징하는데 묘하게도 그 색깔은 일상생활에서 위험성을 뜻하기도 한다. 붉은 신호가 켜져 있는데도 마구 길을 건너는 사람처럼 사람들을 아슬아슬하게 하고 있는 것이다.<정규웅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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