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며 겨자먹는 민자 재산공개/급히 입장정리한 속사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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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거스를 수 없는 대세”… JP 전격제의/대통령 압력설도… 야까지 파급 확실
10일 오전 민자당에 나가있던 석간신문 기자들은 한바탕 소동을 벌여야 했다. 민자당의원·당무위원(원외 포함)의 재산공개 문제와 관련,갑자기 뒤바뀌어진 당의 입장을 마감시간 훨씬 뒤에 처리해야 했기 때문이다.
당은 이날 석간의 마감시간 40분쯤 뒤인 오전 11시10분쯤 김종필대표·당 3역의 재산공개를 금명간 실시하고 소속의원 등의 재산은 오는 20일까지 공개한다는 입장을 발표했다. 그러나 이같은 결정을 한 당무회의가 열리기 전까지의 분위기는 완전히 달랐다. 『재산공개는 여야가 협의해 실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최형우사무총장)는게 당의 입장인 것처럼 비쳐졌기 때문이다. 자연 반전의 배경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최 총장 발언땐 안도
○…재산공개 문제에 대해 논의할 고위당직자회의 당무회의가 예정되어 있던 이날 아침 최 총장이 기자들에게 밝힌 「여야협의에 따른 재산공개」입장은 여러 측면에서 소홀히 다룰 수 없는 사안으로 받아들여졌다.
우선 그가 김영삼대통령의 의중을 누구보다도 잘알고 있다고 누구든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가 이날 이같은 발언을 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지금까지 「저녁 굶은 시어머니 얼굴」을 하고있던 많은 의원들이 갑자기 화색으로 바뀌어 「당연한 생각」이라고 반겼다. 심지어 어떤 의원은 『YS가 재산공개의 심각성을 이제서야 깨달은 것 같다. 재산공개후 신판 인민재판 등 우려했던 부작용이 나타나면 종국에 가서는 당이 깨질지도 모른다는 당내의 위기의식이 대통령에게 전달됐을 것』이라고 성급하게 해석하기도 했다.
또 하나 간과할 수 없는 것은 그동안 당이 재산공개 문제와 관련,계속 후퇴하는 입장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당은 재산공개 뜻을 처음으로 밝혔던 지난 5일만 해도 당장이라도 단행할 것 같은 인상을 풍겼었다. 그런데 소속의원들의 불평불만으로 자꾸만 소연해지자 당은 『장·차관이 공개한 뒤에 한다』『동산은 개개인의 양심에 맡긴다』『의원은 국민대표기관이므로 재산에 대한 실사 등 사전검증은 필요없고 국민이 검증하면 된다』는 등의 신중한 태도로 선회했다. 이런 마당에 재산공개를 주도적으로 추진해온 최 총장이 여야협의 운운해 당내에서는 『재산공개는 물건너 가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돌기도 했다.
○당무회의서 뒤집혀
○…그런데 당무회의는 당 실세인 최 총장이 무색할 정도로 정반대의 결정을 내렸다. 소속의원들의 재산공개 시기를 장·차관 공개시점 등과 관계없이 딱 못박고 김 대통령이 한 그대로의 요령대로 실시하겠다고 할줄이야 아무도 예상치 못했던 것이다.
이는 김 대표가 『대표·당3역은 며칠내에,의원·당무위원은 20일까지 재산공개하자』고 기습제안해 결정됐다. 이 과정에서 50여명의 당무위원들은 지극히 원론적인 차원에서 부작용 최소화를 지적하거나 민주당의 협의제의 사실만을 확인한 2명을 빼고는 하소연 한마디 못했다.
개혁에 관한한 늘 온고지신론으로 속도조절을 강조해온 김 대표가 이처럼 의외의 태도를 보인 이유는 대략 두갈래로 해석된다. 우선은 김 대표가 나름대로 김 대통령의 개혁의지를 가늠해 선수를 두었다는 관측이다. 즉 개혁은 거스를 수 없는 대세인만큼 적극적인 태도를 보임으로써 향후 자신의 입지를 다져놓겠다는 계산의 발로라는 것이다. 김동근대표비서실장이 『요 며칠새 총재·대표 사이에 연락이 오간 적은 없다. 그러나 대표는 총재의 뜻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고 말한 것도 이를 뒷받침 한다는 분석이다.
다른 하나는 최근 소속의원들이 재산공개에 매우 소극적이라는 사실을 심상찮게 생각한 김 대통령이 강한 압력을 넣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이와 관련,이날 고위당직자 회의에 참석한 김덕룡정무장관이 대통령의 의지를 전달했을 것이라는 설이 있다. 김 장관은 회의가 끝난뒤 기자들에게 『정치권 부패가 먼저 척결되지 않으면 개혁은 어렵다는게 대통령의 생각』이라고 말해 이를 뒷받침했다. 결국 이날 재산공개 결정은 그것이 김 대표의 자발적인 행동에 따른 것이든,김 장관의 자극이었든간에 대통령의 뜻이 제대로 반영된 결과라고 청와대측은 평가하고 있다.
○많을수록 전전긍긍
○…민자당의원·당무위원의 재산공개가 이뤄지면 그 여파는 상당히 클 것으로 보인다. 먼저 국민감정을 자극할 정도의 막대한 재산을 소유한 사람은 축재과정을 막론하고 일단 따가운 시선을 받을 가능성이 크며 향후 정치생명에 심각한 영향을 받을지도 모른다. 재산가가 많은 민정계에서 우려하듯 여론향배에 따라선 세력재편이 일어날 수도 있다.
더욱이 재산을 은폐하거나 불법적인 축재사실이 드러날 경우 당사자는 치명상을 입을 것이다.
한편 민주당 등 야권도 재산공개 압력을 거세게 받게될 것이다. 민자당에 이어 민주당 등이 뒤를 따르면 축재와 관련,상호비방·음해가 상승작용을 일으켜 정치적 소모 등 비생산적인 것들을 생산할 수도 있다.<이상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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