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중국적(분수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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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관용구로 이따금 쓰이는 말에 「박쥐의 두 마음」이란 것이 있다. 항상 우세한 쪽에 붙는 기회주의자의 교활한 마음을 일컫는다. 이와 관련한 박쥐의 우화는 국민학교시절 누구나 읽은 경험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날짐승의 나라와 들짐승의 나라간에 전쟁이 일어났는데 박쥐는 눈치를 살펴 날짐승의 쪽이 우세할 때는 날개를 펄럭이며 스스로를 새라 하고,들짐승이 우세할 때는 날개를 감춰 스스로를 들짐승이라 하여 기회주의자의 속성을 그대로 드러낸다는 이야기다. 이 우화의 결말은 두 세력간에 화해가 이루어져 박쥐는 마침내 양쪽에서 따돌림을 당하게 된다는 것이다.
라 퐁텐느의 우화에도 비슷한 것이 있다. 「박쥐와 두마리의 족제비」라는 것이 그것이다. 역시 때에 따라 유리한 쪽으로 변신하는 박쥐의 간교한 처세술을 다루고 있다.
모든 우화가 다 그렇지만 박쥐와 관련한 우화들은 박쥐를 닮은 인간들이 인간사회에도 얼마든지 있을 수 있음을 암시한다. 특히 혼란상을 보이거나 가치관이 마멸돼 있는 사회에서는 이런 부류의 인간들이 판을 치게 마련이다. 부자들이 모인 곳에서는 부자처럼 행세하고,가난한 사람들이 모인 곳에서는 가난한 사람처럼 행세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권력자의 주변과 반체제적 그룹사이를 오가며 그때그때 편리하게 변신하는 사람들도 얼마든지 있다.
이중 국적을 가진 사람들은 이를테면 그같은 「인간박쥐」의 전형인 셈이다. 이들이 교통법규 등 국내법을 위반하게 되면 당당하게 자신은 한국인이 아닌 외국인이라고 주장한다. 외국에서 잘못을 저지르게 되면 틀림없이 한국인 행세를 할 것이다. 추리소설 같은데 이중국적자들이 자주 등장하는 까닭도 두나라의 국적을 가지고 있으면 운신하기가 편해 범행을 저지르는데 유리하기 때문이다.
여러가지 경우가 있을 수는 있겠지만 한국인이면서 또다른 나라의 국적을 가진 사람들이 한국인으로서의 긍지나 애국심을 간직하기가 어려우리라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고위공직자 당사자나 그 가족이 이중국적을 가진 적이 있거나 현재 가지고 있다면 그런 점에서 그것은 법의 문제이기 이전에 도덕의 문제며 양심의 문제일 것이다.<정규웅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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