잇단 「인사파문」에 관가 불안/“어느선까지 갈까” 술렁술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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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행정불신까지 번져 개혁망칠까 걱정/「인민재판식」으로 계속되자 볼멘소리
새정부가 개혁의 기치를 높이 들자마자 신임 서울시장의 사퇴에 이어 개혁에 적절치 못한 인사가 내각에 포함돼있다는 논의로 확산되는데 대해 관가는 착잡한 시선을 보내고 있다.
신한국창조를 위해서는 반드시 극복해야할 불가피한 고통이라는 옹호론도 있다.
그러나 문민정부의 개혁이 이처럼 인민재판식으로 시작되는 양태가 바람직하느냐는 문제제기도 만만치 않다.
관가는 한때 최근의 사태발전을 은근히 반긴 흔적이 없지 않다.
전문관료가 사실상 배제된 조각이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는 사실을 반증해주는 셈이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아무리 관료조직이 썩었다고들 하지만 관료들은 그래도 어느정도 공개적인 검증을 거친 인물들이라는 자부심을 내비치는 측도 있었다.
하위직 공무원들은 그들대로 피라미나 잡아 눈가림이나 하던 과거의 개혁과는 다를 것이라는 기대를 보였다.
따라서 서울시장이 사퇴하자 공직사회안에서도 은근히 박수를 보내는 측이 적지 않았다.
그러나 인사 파문이 꼬리를 물고 계속되자 관가는 진짜 긴장하기 시작했다. 뭔가 심상찮다는 분위기를 직감한 듯한 모습이다.
새로 각료에 임명된 사람들의 개인적인 문제가 아니라 새정부의 부정부패척결 방법이 바로 현재 벌어지고 있는 사태에 숨어있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다.
과거 정부의 공직부조리 척결은 사정기관을 중심으로 진행됐다.
개혁의 목적도 부패구조의 근원적 해체보다는 결과적으로 이제 그만하면 됐다는 분위기 조성에 그쳤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3·5·6공화국을 거치며 관가는 개혁과 사정에 어느 정도 익숙해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통령이 음성적인 정치자금을 운용하는한 부패척결이 말처럼 단순한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았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겉으로는 겁먹은듯 했지만 서슬퍼런 시기만 넘기면 예전처럼 되돌아간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번에는 사정이 크게 달라졌다.
관가에서는 이번 사태의 출발이 근원적으로는 대통령이 정치자금을 절대로 받지 않겠다고 선언한데서 비롯된 것으로 보고 있다.
다시말해 대통령마저 부정부패에 관한한 언제든지 국민의 심판을 받겠다고 나선 이상 과거처럼 사정이나 개혁의 대상에 대한 한계는 없어진 셈이다.
더구나 김영삼대통령이 부정부패의 핵심고리가 관가에 몰려 있다고 공언한 만큼 신임 각료들에 대한 무차별 공격이 끝나면 공직사회 전반으로 그 화살이 몰려 올 수 밖에 없으리라고 관가는 보고 있다.
특히 개혁의 속도와 방법이 과거와는 전혀 다른 양상을 보인다는게 관가를 더욱 불안하게 하고 있다.
『인민재판식 사정이나 개혁은 문제가 있습니다. 대통령이 이같은 사태 발전을 원치 않았다면,이미 개혁이 위로부터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 국민의 손에 의해 통제불가능한 상황으로까지 치닫는다면 현재의 양상은 자칫 행정부에 대한 총체적인 부정으로 발전할지 모릅니다. 그런 상황이 오면 개혁이고 뭐고 국가는 엄청난 혼란에 빠지고 말것입니다.』
중앙부처의 한 고위공직자는 이렇게 우려했다.
『개혁은 혁명이 아닙니다. 집권자가 철저한 프로그램을 준비하고 시행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꿩도 매도 다 놓치는 비극만 초래될 뿐입니다.』
황인성총리는 이같은 관료조직의 두려움을 감지한듯 지난 4일 새정부의 국무회의에서 『개혁으로 모든 것을 잃는다고 생각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달랬다.
그러나 관가는 지금 여전히 불안해 한다. 최근의 사태발전을 어떻게 받아들여야할지 엄두가 나지 않기 때문이다.<이재학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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