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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보드리야르 불 사회학자 저서 국내 출판 활발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3면

프랑스 사회학자 장 보드리야르(64)의 저서가 국내에 잇따라 소개되면서 그의 사상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1970년이래 파리 제10 대학교수로 있는 보드리야르는 탈 현대사회의 대중문화와 지배구조를 기호학적 관점에서 해석,「탈현대 사회에서는 실재는 사라지고 기호와 모방이 실재를 대신한다」는 주장을 편 급진적 사회사상가다.
포스트모더니즘 논의에서 빠질 수 없이 언급되는 그의 저서들중 국내에 소개된 것은『소비의 사회』(문예출판사), 『기호의 정치경제학 비판』(문학과지성사), 『시 뮬라시 옹』(민 음사), 『섹스의 황도』(솔) 등 지난해 12월이래 4권에 이른다.
그는『소비의 사회』에서 현대 사회에서는 생산보다 소비의 개념이 우선시 됨을 주장하면서 사용가치와 교환가치의 2분법으로는 이러한 현상을 설명할 수 없다고 보았다. 그는 현대의 소비문하를 광고·TV등 미디어를 통해 확산되는 기호가치의 개념을 빌려 설명한다. 소비자가 구매하는 것은 더 이상 물건의 사용가치가 아니라 기호가치라는 것이다.
생산·효용성·기능성보다는 교환·기호·상징성 등이 현대적 삶의 본질을 규정한다는 그의 사상은『기호의 정치경제학 비판』에서 더 확대된다.
소비자본주의 사회에서 우리는 생산물을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상품으로 기능하는 사회적 이미지, 즉 기호를 소비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오늘날의 사회적 지배나 통제는 이제 생산력과 생산관계라는 노동과정 외부로 옮겨져 욕구와 욕망을 문화적으로 조작하는 방법으로 이뤄진다는 것이다. 사물의 기호화라는 그의 논의는『시뮬라시옹』에서 오늘의 시대는 모든 삶이 모사(복제)속에서 분해·재생산되고 이것이 진짜 이상의 실재로서 기능하는 세계라는 주장으로 이어진다.
모든 사물들은 해석의 현기증일 뿐이며 되풀이되는 모사에서 끝나게 되고, 이미지와 모사들만이 한없는 순환의 놀이를 펼치며, 사회·질서란 이런 놀이를 가상적인 실재로 환원시킴으로써 구성된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설명이다.
『섹스의 황도』는『생산의 거울』『상징적 교환과 죽음』『유혹에 대하여」등 보드리야르의 저서중 중요 부분을 모은 것이다. 『생산의 거울』에서는 이성과 합리성에 근거한 서양 형이상학 및 이와 결합한 자본주의적 합리성이 완고한 생산의 법칙에 따르고 있으며 여기에 반대하는 마르크스주의도 체계의 논리속에 기능할 수밖에 없음을 보여주고 있다. 『상징적 교환과 죽음』에서는 기호의 소비를 벗어난 원시사회의 상징적 교환양식이 제시된다.
『섹스의 황도』에선 남성·여성의 체계를 없애기 위해서는 여성이 남성과 동등한 권리를 주장할 것이 아니라 성의 구별이 기호에 불과할 뿐임을 드러내야 한다고 말한다. 서구의 합리성을 깨뜨리려는 보드리야르의 사상은 과격하고 급진적이며 비관적이고 허무주의적이다.
주로 70년대에 활약했던 보드리야르가 뒤늦게 국내에서 다투어 소개되는 이유는 90년대 들어 한국사회에도 압구정 문화와 같은 소비사회적인 징후가 나타나고 있는 데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 『포스트 모더니즘과 비판사회 과학』을 쓴 김성기씨(서울시립대 강사)는 『문화적인 것이 물질성 내지 사회 경제적인 것을 규정한다는 하이테크 사회이론가 보드리야르는 오늘날 사회의 어떤 근본적인 변모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면서 『하이테크 시대의 영향을 피할 수 없는 우리에게 그는 서구사회 이론의 한계와 문제점을 미리 보여준다는 점에서 의미를 갖는다』고 말했다. <조현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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