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칠의 「과오」(분수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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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2차대전의 영웅으로 칭송돼온 처칠의 역할을 송두리째 깎아내리는 책이 최근 영국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
근간 뉴스위크지에 따르면 존 찰리가 쓴 『처칠,영광의 끝』이라는 책은 처칠이 1940년에 히틀러와 화평을 이룰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히틀러를 완전 굴복시키려다 전쟁을 5년이나 더 끌게 됐고,그결과 영국은 승리를 거두고도 제국의 자리에서 밀려났다는 것이다.
또 처칠이 만약 1940년에 히틀러와 공존수준의 화평을 이루었더라면 히틀러는 서부전선에 신경쓸 것 없이 소련공산세력을 영국대신 두들겨 부쉈을 것이라는 일부 평자의 주장도 있다.
과거 대전에 대한 수정주의 사관이란 별 의미가 없는 것이기는 하다. 그러나 워낙 제시되고 있는 대안이 엄청난 이야기여서 지적 호기심을 일으킬만 하다.
특히 2차대전의 전승국이면서 제국판도를 잃고 2류국가로 밀려난 영국인들로서는 더욱 그럴 것이다.
2차대전에 대해서는 소련쪽에서도 오래전부터 내세우는 수정주의적 관점이 있다. 그것은 연합군이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훨씬 앞당길 수 있었는데도 독·소군이 맞붙어 서로를 궤멸시키도록 내버려 두기 위해 1944년 6월6일까지 미뤘다는 주장이다.
사실이 어떠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결과만 놓고 보면 그럴듯한 점이 있다. 2차대전중 소련군의 전사자수는 6백10만명. 그중 대부분이 유럽전선에서 노르망디상륙 이전에 발생했다.
사실이든 아니든간에 이런 역사상의 가정은 소름끼치게 하는 면이 있다. 특히 지금처럼 국제관계에 거대한 변화가 일고 있는 때는 더욱 그렇다.
일본을 유엔안보리 상임이사국에 올리려는 움직임이 일본자위대의 팽창과 때맞춰 일고 있다. 그런가 하면 이런 움직임을 견제할만한 세력은 무력화돼 버렸거나 그런 역할을 할 여유를 갖지 못하고 있다.
그런 가운데 오랜 이 지역 균형세력이던 미국은 관심을 다른 곳으로 옮겨가고 있다. 이와 같은 유동적인 상황속에서 우리 주변에선 혹시 30년,40년후에 땅을 치고 원통해할 역사의 음모가 진행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정신을 똑바로 차릴 때다.<장두성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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