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제·보호 대신 자율과 경쟁으로/취임사서 밝힌 새 국정방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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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안정 기조위에 과감하게 개혁/대통령 솔선수범으로 국민동참 유도
김영삼 새 대통령은 25일 취임사에서 문민민주주의 시대의 개막을 선언하고 향후 5년간의 국정목표를 「변화와 개혁을 통한 신한국창조」에 두었다.
그는 또 국정개혁의 3대과제로 부정부패척결과 경제회생,국가기강 및 권위의 회복을 제시했다.
취임사에 나타난 문맥을 그대로 해석하면 김 대통령은 안정기조를 깨뜨리지 않는 범위내에서의 과감한 개혁을 통한 정치·경제적 선진국 진입을 염두에 두고 있다.
그러나 그의 개혁구상은 진보주의적 이념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어디까지나 자유민주주의와 자본주의로의 발전을 저해하는 장애요인을 과감히 제거하거나 바로잡자는 의미다.
『신한국은 보다 자유롭고 성숙된 민주사회』 『변화하는 세계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다면 선진국 문턱에서 주저앉고 말 것』이라는 것 등 「Y노믹스」라 부르는 신경제구상이 「규제와 보호 대신에 자율과 경쟁을 보장」하는 쪽을 지향하고 있음을 대변한다.
김 대통령은 사회전반에 뿌리깊게 만연된 부정부패가 역대정권의 정통성부재에서 나왔다고 믿고 있다. 취임사 서두에 『오늘을 맞기위해 30년의 세월을 기다려야 했다』며 문민정권의 출범을 다소 감상적으로 표현한 것은 과거정권과는 본질적으로 탄생과정이 다를뿐 아니라 과거정권의 부정적 요소를 개혁의 대상으로 삼고 있음을 뜻한다.
그는 이러한 문민정권의 정통성을 기반으로 곧 위로부터의 개혁이 시작될 것임을 예고하고 있다. 부정부패를 나라를 좀먹는 가장 무서운 적으로 규정한 것은 그의 일관된 주장이며 부정부패 척결에 성역이 없음을 다시 한번 약속했다.
서울대 김광웅교수는 『역대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한결같이 자신의 집권을 정당화하는 논리를 펴고 부정부패의 척결을 약속했다』고 말하고 『그러나 어느 정권도 이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는 것을 교훈으로 삼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박정희대통령은 50년대 이승만정권의 부정부패상에 대응해 『불의와의 타협을 배격하며 부정부패의 소인을 국민 스스로가 절개 청산해야 한다』고 강조했으나 취임초부터 5·16주체세력들의 4대의혹사건에 시달렸다. 전두환대통령도 『백수의 왕인 사자도 다른 맹수의 공격때문에 죽는 것이 아니라 내부의 병균이나 기생충에 죽는 것』이라며 부조리와 부패에 대한 위기감을 강조했지만 얼마 안가 장영자사건을 시발로 부패의 전철을 피하지 못했다. 노태우대통령은 결과적으로 가장 심한 친·인척의 발호와 정치개입이란 오명에 시달렸다.
따라서 김 대통령도 끊임없이 주변을 깨끗이 하지 않으면 머지않아 부정부패 척결의지는 훼손당하고 말 것이다.
민간의 창의존중,절약과 저축 강조,사치와 낭비추방,근로의욕 제고와 기술혁신 등을 내용으로 한 신경제구상도 3공부터 6공까지 역대 대통령의 취임사마다 강조됐던 대목.
이를 위해서는 기득권층이 더 많은 것을 양보해야 한다는 것이 김 대통령의 기본인식이다. 아울러 김 대통령은 인내와 고통의 분담을 호소하면서 공동체의식을 강조하고 있다.
그는 또 금세기내 통일을 약속하면서 북한의 김일성주석에게 언제 어디서든 남북정상회담을 가질 것을 제의했다.
그렇지만 김 대통령은 『이 시점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감상적 통일지상주의가 아니라 통일에 대한 국민적 합의』라고 강조해 성급한 통일추진을 스스로 경계하고 있음을 분명히 했다.
역대 대통령의 취임사는 그 시대의 모순과 과제를 동시에 반영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김 새 대통령이 취임사에서 제시한 부정부패척결과 경제회생은 국민적 공감대이자 형극의 목표이기도 하다.
취임사주제로 「우리 다함께 신한국으로」를 내세웠듯 그가 얼마나 솔선수범하면서 국민들의 동참을 끌어낼 수 있느냐에 따라 5년뒤의 평가는 달라질 것이다.<김두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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