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사외교(분수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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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85년 여름 워싱턴에는 한국의 밀사 한사람이 도착했다. 당시의 레이건행정부는 교역 상대국들의 시장개방을 이끌어내기 위해 이른바 미 통상법 301조를 휘두르기 시작하려던 때였다. 이 밀사는 국무부를 거치지 않고 백악관의 한 보좌관을 통해 레이건대통령과의 면담을 성사시켰다.
이 자리에서 그는 미국이 한국에 대해 301조를 적용하지 말아달라는 내용의 우리 대통령 친서를 전달했다.
그러나 그로부터 한달이 채 못가 미 통상대표부는 한국의 지적재산권보호실태에 대해 301조를 적용하겠다고 발표했다. 그것은 단일국가에 대해 301조를 적용한 첫 케이스가 되었다. 그리고 이 밀사의 레이건 면담을 주선해준 마이클 디버 전보좌관은 로비혐의로 조사를 받았다.
이 에피소드는 과거 우리의 통상외교가 얼마나 원시적으로 행해졌는지를 보여주는 하나의 예에 불과하다. 사람의 사고의 한계는 남도 자기와 똑같다고 생각하는데 있다. 그 당시 한국의 대통령은 나는 새도 떨어뜨릴 힘을 갖고 있었다. 한국안에서는 말이다. 그러니 미국대통령도 모든 행정기구를 전단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국무부를 거치는 것과 같은 정상적인 절차는 외면하더라도 레이건만 만나면 만사가 잘 풀린다고 봤던 것이다.
그런 착각은 또 외교란 정상끼리의 친분이면 다 된다는 어처구니없는 행태를 낳았다. 걸핏하면 우방 총리와 전화통화를 하고 만날때는 어린아이들처럼 손을 붙잡는 희한한 모습을 보였다.
이제 문민정부가 들어서면 외교도 전문가들 손으로 넘어가야 한다. 권력잡은 아마추어에 맡기기에는 우리 외교의 폭과 깊이가 너무 크다.
당장의 문제로 클린턴 미행정부는 지적재산권,반도체덤핑문제로 엄청난 압력을 가해오고 있다. 일본의 국제적 역할도 질적으로 달라지고 있다. 동시에 우리의 유엔내 활동영역도 급속히 넓어지고 있다. 중국도,구소련도 우리가 외교를 통해 활용할 수 있는 우방으로 변하고 있다.
「신한국」 건설과 함께 새 정부는 외교면에서도 새로운 발상전환을 이루었으면 한다.<장두성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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