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정부맞는 정가/인사에 뒤숭숭 사정에 몸조심(공무원)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0면

◎민원 엄격·신속처리 구설수 예방/5공땐 기관별 강제 할당식 숙정/눈밖에 난 사람 끝까지 추적 괴롭히기도/“약한 부서에만 매서운 칼” 불만도
새정부 출범을 눈앞에 둔 공무원들의 마음은 뒤숭숭하다.
장·차관이 바뀌는 것을 시작으로 공무원들에게는 가장 민감한 문제인 인사바람이 불기 시작하는데다 차기정부가 대대적인 사정작업을 예고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공직자들의 부정·부패 척결은 차기대통령이 내세우고 있는 3대과제중의 하나로 부정방지위원회를 두어 윗물맑기운동 차원에서 성역없이 추진한다는 방침을 거듭 강조하고 있어 공무원들을 바짝 긴장시키고 있다.
관가에서는 벌써부터 『모기관이 1급(관리관) 이상을 체크했는데 우리 부처에서도 비리관련자가 적발됐다더라』는 풍문이 돌고 있다.
민원부서의 간부들은 구설수에 오르는 사태를 예방하기 위해 민원인 접견때는 실무자를 배석시키는가 하면 평소 미뤄온 골치아픈 민원도 엄격한 기준에 따라 신속히 처리하는 등 몸조심하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정권교체기나 정치적 변혁기마다 어김없이 공직사회를 강타하는 사정작업은 「권력의 칼」이라는 비유처럼 정권의 특성과 통치자의 스타일을 그대로 드러낸다.
정치적 소용돌이속에서 솟아올라 정권의 권위를 세우기 위한 방편으로 사회정화위원회라는 별도조직까지 만들어 무리하게 기관별 강제할당식 숙정을 벌였던 5공의 사정은 정권의 특성을 극명하게 보여준 예다.
통치자로서 박정희대통령은 독특한 사정원칙과 방식을 적용했던 인물이다. 근래에는 자녀의 결혼식에 화환을 진열하는 일 등 공인으로서 생활자세도 사정의 대상에 오르고 있지만 박 대통령은 사생활에 대해서는 상당히 너그러운 편이었다.
70년대 한 장관이 사무실에서 여비서와 벌인 불륜의 장면이 건물창을 닦던 인부에게 목격돼 소문이 퍼지는 바람에 박 대통령에까지 보고됐으나 남녀간의 일이라고 뒷수습만 지시하고 문제삼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고위직의 부정과 부패는 직접 다스리는 독특한 방식을 사용했었다. 70년대 초반의 일이다. 어느날 서울역장실에 대통령의 친필메모가 전달됐다. 종이 한 귀퉁이를 아무렇게나 찢어 『제자리에 갖다놔』라고 쓴 대통령의 글씨를 보고 역장은 소스라치게 놀랐고 며칠후 옷을 벗고 말았다.
이 역장은 역대합실에 별 시선을 끌지 못한채 걸려있는 청전 이상범의 그림을 싸구려 그림으로 바꿔치기해 챙겼다가 그림이 갑자기 없어진 것을 본 단골여객의 투서에 의해 발각된 것이었다.
사정의 칼은 부정을 도려내는 기능에만 충실했던 것은 아니다. 괘씸죄를 저질러 눈밖에 난 공무원의 목을 죄는데도 사정기관이 동원돼 왔다. 최근 물러난 경제부처의 고위간부 Y씨와 L씨는 대통령이 참석한 행사준비에 차질이 있었다는 이유 등으로 밉보인 것이 직접원인이 돼 사정기관의 끈질긴 추적을 받아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기관장들의 지휘방침과도 직결돼 5년간의 국세청장 재임시에 친절봉사를 유달리 강조했던 안무혁씨는 신문 독자투고란에 서울 모세무서의 불친절사례가 보도되자 세무서장과 간부들을 줄줄이 지방으로 좌천시키기도 했다.
또 검찰이나 감사원 등 강한 부처에는 약하고 건설부·보사부 등 약한데는 매서웠던 사정방식은 사정의 효과뿐만 아니라 공무원사기에도 악영향을 미쳐 불만사항이 되어 왔다.
『새정부의 사정은 문민정부다운 모습을 갖추게 되기를 기대합니다. 공직기강을 새롭게 세우고 사회의 병폐를 고치기 위해서 환부를 제거하는 작업은 반드시 필요한 것이지만 그것이 막연한 공포의 대상이 되지 않도록 제도부터 투명하게 갖추는 일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중앙부처의 한 고위공무원은 부패척결만큼 부패예방을 위한 여건조성에도 힘을 쏟기를 바란다고 새정부에 대한 기대를 표시했다.<이덕영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