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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 지금 방송가에선 제발 ‘닥본사’ 해주세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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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요즘 네티즌은 ‘꽂히는’ 드라마가 있으면 프로그램 게시판이나 관련 기사 댓글을 통해 ‘닥본사’하자고 서로 격려한다. 시청률이 드라마 성공의 절대 척도로 여겨지는 풍토에서 좋아하는 드라마를 띄워보자는 의도다. 이 같은 현상의 이면엔 지상파 본방송 시청이 더 이상 주류가 아닌 현실이 깔려 있다. 각종 케이블채널의 재방송과 VOD·DVD 등 유료 콘텐트 매체, P2P 불법 다운로드까지 드라마를 시청할 수 있는 통로가 무궁무진하기 때문이다.

 ◆국민 드라마 사라진다= 올 초 ‘주몽’이 회당 시청률 50%를 넘나든 이래 소위 ‘국민 드라마’라고 불릴 정도의 인기작이 없다. 회당 시청률 역대 최고는 65.8%를 기록한 KBS ‘첫사랑’(1997년 4월 20일). 톱10 안에서 ‘태조왕건’(KBS 2001)과 ‘대장금’(MBC 2004)을 제외하고 모두 2000년 이전 드라마들이다.

 90년대만 하더라도 한 해 두세 편 정도는 시청률 50%를 넘어섰다. 점유율로 환원하면 열 명 중 예닐곱 명은 같은 시간에 같은 드라마를 봤단 뜻이다. SBS ‘모래시계’(1995)가 방영될 당시엔 ‘귀가시계’란 말까지 유행했다. 하지만 더 이상 시청자는 지상파로 ‘닥본사’하지 않는다.

 실제로 방송영상산업진흥원 집계에 따르면 지상파TV 시청률은 2005년 31.9%로 2001년에 비해 7.3%포인트 감소했다. 일평균 시청량도 2시간6분으로 2001년에 비해 31분 줄었다. 반면 같은 기간 케이블TV는 44분 늘어 1시간5분으로 집계됐다. 가장 각광받는 케이블채널이 드라마채널임을 감안하면, 결국 드라마를 보는 플랫폼이 바뀌고 있는 것이다.

 ◆트렌디 드라마는 인터넷으로=한고은이 ‘닥본사’를 읍소한 ‘경성스캔들’은 6월 25일~7월 1일 일주일간 시청률이 6.7%로 KBS 드라마 톱10에 겨우 걸쳤다(AGB닐슨미디어리서치 집계). 하지만 KBSi의 다시보기에선 ‘대조영’ ‘하늘만큼 땅만큼’에 이어 3위에 올랐다. 같은 시간대 방영된 MBC 수목 미니시리즈 ‘메리대구공방전’도 시청률은 4%대를 맴돌았지만 iMBC 드라마 다시보기에선 ‘에어시티’ ‘나쁜여자 착한여자’에 이어 3위를 기록하고 있다. 두 드라마 모두 SBS ‘쩐의 전쟁’에 밀려 본방송 시청률은 낮지만 VOD로는 인기다.

시청률과 VOD 클릭수의 역전은 주로 젊은층이 선호하는 트렌디 드라마에서 나타난다. 굳이 방영시간에 맞춰 ‘닥본사’하지 않고 편한 시간에 혼자만의 VOD로 보는 걸 선호하는 것이다. 지난해 젊은층의 폭발적인 사랑을 받았던 MBC ‘환상의 커플’은 방송 두 달 동안 평균 시청률은 13.6%(AGB닐슨)에 그쳤다. 하지만 그해 MBC 드라마 중 가장 많이 팔린 VOD 3위에 올랐다.

 대표적인 매니어 드라마로 꼽히는 ‘부활’도 마찬가지. 2005년 방영 당시 KBS 전체 시청률 20위권에도 들지 못했지만 VOD 조회로는 ‘불멸의 이순신’에 이어 2위를 달렸다.

 ◆닥본사 집착하는 이유는=방송사 입장에서 가장 좋은 것은 본방송 시청률도 높고 VOD 클릭수도 높은 것. 미국의 미디어칼럼니스트 스티브 존슨은 이 같은 선순환이 이미 시작되고 있다고 지적한다. 드라마 콘텐트가 케이블채널·VOD·DVD를 통해 영화처럼 반복 소비되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복잡하고 정교한 드라마일수록 보고 또 보는 시청층이 늘어난다(2006년 출간 『바보상자의 역습』).

 실제로 방송3사의 VOD 누적 클릭수를 보면 시청률 상위 드라마가 인터넷에서도 반응이 좋다. 각각 2005년과 2006년 MBC 최고 인기작이었던 ‘내 이름은 김삼순’과 ‘주몽’은 VOD 판매율도 가장 높았다. 시즌 2까지 나왔던 MBC ‘궁’도 시청률·VOD 양쪽 성적이 다 좋았다. 이른바 ‘웰메이드 드라마’가 본방송뿐 아니라 다시보기에서도 각광받는다는 뜻이다.

 문제는 이런 VOD나 DVD를 상회하는 P2P 다운로드. 불법 다운로드를 통해 미국·일본 드라마를 보던 관행이 국내 드라마라고 달라지지 않는다. 이러한 무료 채널이 기승을 부리는 한 콘텐트의 반복 소비를 통한 수익증대를 기대하기 어렵다.

 그래서 지상파 방송사는 여전히 본방송 시청률에 목을 맨다. 드라마 성공 여부를 평가할 수 있는 잣대가 아직은 시청률뿐인 데다 시청률이 곧 광고 판매로 이어지는 구조 때문이다. 제작발표회 때마다 출연배우들이 “닥본사 해달라”고 읍소하는 이유다.

 

강혜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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