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약 밀」파동 무관심한 한국공관/박준영뉴욕특파원(취재일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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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미국에서 수입된 밀이 기준치를 1백32배나 초과하는 농약을 함유하고 있음이 밝혀져 충격을 주고 있는데도 미국쪽에서 문제의 원인을 찾아봐야 할 주미대사관은 무관심으로 일관하고 있다. 주미대사관이 이 사건과 관련해 한 일은 이같은 사건이 한국에서 일어났다는 사실을 미 연방식품의약국(FDA)에 「통지」하고 미 밀생산협회에 검사과정을 물어본 것 뿐이다. 미국에서 말썽이 되고 있는 살충제종류를 참고로 본국정부에 알려준 것이 이와 관련해 한 또다른 일이다.
대사관직원들은 『본국 신문에 난 이상의 것을 알지 못하고 있다』고 태연하게 답변하고 있다. 또 『본국정부의 별 지시가 없어 대사관차원에서 할일이 없다』고도 말한다.
이같은 문제를 담당하기 위해 파견되었을 것으로 생각되는 농무관이나 보사협력관이 저마다 이 문제를 다룰 책임이 자신에게는 없다고 말한다.
더욱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이 문제로 미국과 논의할 단계는 아닌 것으로 한국대사관측은 판단하고 있다는 것이다.
국민들의 건강에 중대한 위험을 초래할 수도 있는 사건이 주재국과 관련해 발생했는데도 국민들의 귀중한 세금을 엄청나게 쓰고 있는 대사관이 남의 일인양 스쳐 지나가고 있는 이유가 무엇인지는 알 수 없다.
연미복을 입고 파티에나 참석하는 것을 주임무로 알고 있는지,혹은 본국의 권력자에게 생색낼 수 있는 고위회담같은 일에나 신경을 쓰고 있는지,아니면 본국의 권력이양기를 맞아 근무분위기가 풀어져 일손을 놓고 있는 것인지 알 수 없다.
혹은 미국과의 무역에서 미국측의 요구를 처리하는데만 익숙해있고 우리측의 주장을 적극 전달하는데는 소극적인 탓인지도 모르겠다.
한국은 미국으로부터 농산물시장개방이라는 엄청난 압력을 받고 전전긍긍하고 있다.
이같은 상황에서 이번 사건은 원인이 어디에 있든 한국이 적극적인 원인조사와 문제제기를 함으로써 시장개방압력을 하고 있는 미국 정부나 농업계에 제동을 걸 수 있는 계기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본국 정부의 지시가 없어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다는 주미대사관의 태도가 국내 공무원들은 물론 외국에 파견된 우리 외교관들이 국민이나 전체국가를 위해 봉사하기보다는 윗사람들만을 보며 일하는 표본이 아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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