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책갈피] 나무 왈 “세상 이치 내게 배우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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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지은이는 ‘모든 것을 나무로 생각하는 나무 환자’를 자처한다. 그에게 나무란 모든 것의 근본이다. 나무 목(木)자의 밑동 뿌리 부분에 가로줄 표시를 한 게 근본 본(本)자라는 사실만 봐도 그렇지 않으냐는 것이다.

 나무와 관련한 다른 한자(漢字)를 뜯어보면 설득력이 더해진다. 나무 빽빽할 삼(森)은 나무가 한없이 늘어선 모습을 형상화한 것으로, 우주의 모든 현상을 의미하는 삼라만상(森羅萬象)이 여기에서 유래했다. 여기에서 ‘우주는 곧 나무’라는 고대인의 생각이 드러난다는 설명이다.

 중국사 전공의 계명대 사학과 교수인 지은이는 이런 식으로 나무를 씨줄로, 한자를 날줄로 삼아 세상 이치를 설파한다. 나무 관련되는 한자와 함께 고금동서의 나무 이야기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등장한다.

 나무 줄기 부분을 보자. 줄기를 의미하는 간(幹)은 깃대를 닮은 잘 자란 가지를 뜻한다. 그래서 일을 맡아 처리하는 사람을 간사(幹事)라고 부르고, 중심 도로를 간선(幹線)도로라고 한다.

 소나무 부분에선 흥미로운 일화를 소개한다. 소나무 송(松)은 나무 목자에 공변될 공(公)자를 합해 만든 것인데 공이란 글자는 벼슬이라는 뜻도 있다. 사마천의 『사기』에 따르면 진시황이 태산에서 갑자기 비를 만났을 때 피하게 해준 고마운 나무에 공작의 벼슬을 내리면서 이 글자를 만들게 했다.

  나무로 만든 모든 것에도 철학적인 의미가 담겨있다. 한옥에 쓰는 나무 기둥은 둥근 것과 네모난 것이 있는데 둥근 것을 더 높이 친다. 둥근 것은 하늘이고 네모난 것은 땅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둥근 기둥은 관청이나 서원, 사찰에 쓰고 민가에선 네모 기둥을 썼다고 한다. 민가가 둥근 기둥을 쓰면 반역이다. 하지만 경주시 안강읍 양동마을에 있는 회재 이언적 선생이 살았던 향단(보물 412호)은 개인 집이지만 둥근 기둥을 쓰고 있다. 노모 봉양을 이유로 관직을 사양하자 임금이 집에서 어른을 모시면서 경상감사직을 수행하라고 민가 겸 관청 건물을 지어줬다는 것이다.

 사람이 사는 집은 나무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주춧돌 초(礎)는 돌 위에 나무 기둥을 얹어놓은 모양이다. 주춧돌을 정하는 것을 정초(定礎)라고 하는데 이는 곧 건물의 준공을 뜻한다. 예로 1961년에 들어선 건물 입구에 ‘定礎 1961’이라는 표식이 있는 이유다.

 지은이는 이 책을 "한자를 두려워하는 ‘한자 환자’를 치료하기 위해 한자를 나무와 결합해서 만든 신약”이라고 소개한다. 나무 하나로 이토록 거대한 장편을 이끌고 나가는 입담이 놀랍다.

 여담 한 마디. 사과나무에 핀 흰 꽃 사진에 이런 설명이 붙어있다. “부석사에는 해마다 4월 중순부터 눈부시도록 흰 사과꽃 향기가 만발한다.” 문득 무량수전이 보고 싶다. 그 아름다운 배흘림기둥도 원래는 숨쉬는 나무였다.

채인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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