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청사기 명품전(분수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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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1962년인가 63년 당시 미술관장이었던 고최순우국립박물관장을 따라 광주 무등산요지 발굴현장을 취재한 일이 있었다. 무등산 수박이 한창 익어가는 한여름 숨이 콱콱 막히는 뙤약볕 아래서 밀짚모자를 눌러쓰고 분청사기 조각을 캐다가 그래도 더위를 견디기 어려우면 냇가로 달려가 옷을 입은채로 맑은 계곡물속에 뛰어들곤 하던 발굴단원들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분청사기란 분장청회사기의 준말. 고려말기 청자의 쇠퇴와 더불어 시작돼 조선조 백자가 나오기까지 약 2백년간 널리 애용된 도자기다.
이름 그대로 거칠어진 청자표면에 백토의 분으로 한번 화장시킨 다음 그 위에 갖가지 무늬를 새겨넣고 다시 구워낸 것이다.
「도자기전쟁」이라고도 하는 임진왜란때 왜군이 우리 도공을 모두 데려가 일본에서는 「미시마」(삼도)란 이름으로 발전시켰다. 그래서 30년대 우리의 유일한 미술사학자였던 우현 고유섭선생의 일본식 용어에 반대해 새로이 명명한 것이 분청사기다.
이 분청사기에 대한 최 관장의 애정은 각별한 데가 있었던 것 같다. 그가 작고한뒤 후학들에 의해 간행된 『최순우전집』(전5권·학고제간)을 보면 분청사기에 대한 글들이 적지 않은데,그는 분청사기의 멋을 이렇게 칭송했다.
첫째 거친 살결에 분을 바르는 화장술은 새맛으로 승화되어 장식의장 이상의 효과를 낸다. 그러면서도 인위적인 데가 없이 자연스럽고 신선미가 있다. 둘째 대담한 과장·생략·왜곡을 자유자재로 구사한 것은 근대미술의 세계와도 상통하는 데가 있다. 셋째 「예쁘게 생긴 아름다움」보다는 「잘 생긴 아름다움」을 추구해 대범하며 서민적이다.
따라사 세부를 하나하나 뜯어보면 거칠고 서툰것 같기도 하지만 그런 것들이 어우러져 하나가 되었을때 그 전체에서 풍기는 아름다움­ 그것이 분청사기의 아름다움이며 바로 한국미의 원형이기도 한 것이다.
그 분청사기 명품전이 현재 중앙일보사 구내 호암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다.
호암미술관 소장의 분청사기중 보물3점을 포함,모두 2백점이 출품된 이 명품들을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새삼 우리 선인들의 위대한 예술적 재능에 고개가 숙여짐을 느낀다.<손기상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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