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너리티의 소리] 교육열성국이 도와주세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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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지난 크리스마스에 우리 학교는 따뜻하고 의미있는 행사를 개최했다. 우리 학교를 후원하는 한 교회가 몽골 근로자들과 자녀들을 초청해 몽골 학생들의 끼를 마음껏 발휘할 수 있는 잔치를 열어주었다. 한 학기 동안 준비해 온 한국말 연극과 유난히 춤추기를 좋아하는 여학생들의 댄스, 남녀 혼성 합창이 펼쳐져 그들 부모에게 타향의 고달픔을 잊게 해준 자리였다.

이런 행사는 1999년 개교 이래 처음이었다. 한국학교에서 공부할 수 없었던 불법체류 외국인 근로자의 자녀들을 위한 한국어 교실로 시작해 지하실을 전전하다가 광진구청과 여러 교회 및 개인 후원자들의 도움으로 건물을 지어 비로소 지난해 12월에 개원한 까닭이다.

재한몽골학교는 한국에 이주해 있는 몽골 근로자들의 자녀가 다니는 학교다. 왜 하필이면 몽골 아이들이냐는 질문을 받곤 한다. 많은 외국인 근로자 중 유독 몽골인들만이 그들의 자녀를 동반해 이주하기 때문이다. 유목 문화인 몽골인들은 목초지를 따라 이주하듯 어디든 가족이 함께 움직인다. 현재 수도권에만 몽골 아이들이 1천5백여명을 헤아린다. 당연히 이들의 교육 문제가 대두되었고, 대안학교로 재한몽골학교가 설립된 것이다.

지금은 불법체류 외국인 근로자의 자녀들도 한국학교에 다닐 수 있지만, 적응이 쉽지만은 않다. 또래 사이에서 벌어지는 심각한 따돌림으로 마음의 상처를 받는 경우가 종종 있다. 또한 한 학급에 30~40여명의 학생들을 한 선생님이 가르치는 학교의 현실 속에서 한국어를 전혀 모르는 외국 아이는 선생님에게 큰 부담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한국학교 내의 외국 아이는 학습 부진아나 학교 부적응아로 구석으로 몰릴 수밖에 없다. 게다가 외국인 근로자들의 집단 거주 지역에 있는 한국학교에서는 외국 아이를 더 받지 않으려 한다. 한 아이를 받게 되면 그 지역의 모든 외국 아이를 다 받아 주어야 한다는 부담감 때문에 입학 자체를 거부하는 것이다.

이제 한국 사회는 다민족 사회로 가고 있으며 한국의 산업구조에서 외국인 근로자가 차지하는 비중 또한 무시할 수 없는 현실이다. 외국인 근로자와 더불어 살아가며, 그들의 현실적인 자녀교육의 문제에도 관심을 기울여야 할 때다. 한국어 교육은 국어 교육과는 다르다. 또한 이들이 한국에 머무르는 시간이 길어야 3~4년 정도라는 점을 고려할 때 이들을 위한 전문 교육기관이 필요하다. 외국인 근로자의 자녀들은 장차 한국과 우호관계를 맺을 수 있는 좋은 모판이다. 그 모판에 좋은 싹을 심는다면, 장차 한국 국익에 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재한몽골학교는 외국인 근로자 자녀를 위한 전문 교육기관이다. 뜻있는 후원자들의 십시일반으로 운영되고 있다. 매일의 점심과 교과서.학용품은 물론 특기과목의 무료 위탁교육.소풍 등의 외부활동도 후원자들의 도움의 손길이 있기에 가능하다.

그러나 학생들의 주요 학과목 수업은 자원봉사에 의지할 수가 없다. 결강도 많이 생기고, 학사 관리나 성적 관리가 제대로 되지 못한 지난 경험이 있다. 지금은 정교사가 주요 학과목을 가르치지만 재정이 빈약해 교사들의 급료 부담이 문제다. 선진국 학생들이 다니는 여타의 한국외국인 학교들과 달리 몽골과 같은 가난한 나라의 학교는 재정적인 어려움이 크다. 정부는 인권과 복지의 차원에서 가난한 나라 학생들을 위한 학교에 교사 및 재정적인 지원을 해 주기를 바란다.

우리나라는 세계적으로 이름난 교육열성국이다. 우리 사회의 한 구석에서 부모들이 모두 일터로 나가 늦은 시간까지 혼자 공부하며 애쓰는 다른 얼굴의 아이들에게도 새해엔 교육혜택이 고루 돌아가기를 기도한다.

한금섭 재한몽골학교 교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