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발소녀의 해맑은 미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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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며칠 전 오후9시쯤 3호선전철역에서 목격한 일이다. 승차위치의 맨 앞에 목발을 짚은 불구의 소녀가 서 있었다. 전철이 도착하며 승차하려는 순간, 뒤에 서 있던 사람들이 미는 바람에 그녀는 중심을 잃어 버렸다.
불구의 몸을 목발에 의지하고 안간힘을 쓰며 차에 오르려는 소녀를 도와주기는커녕 밀쳐 내고 먼저 타려고 아우성인 사람들의 몰상식은 말하고 싶지도 않다.
정작 내 생각을 붙들어 맨 것은 소녀의 해맑은 웃음이었다.
자신을 밀쳐 내고 차에 오른 사람들을 보고 환하게 웃고 있는 것이 아닌가.
사람들이 타고 난 뒤 다시 한번 승차를 시도했지만 몸이 말을 듣지 않는지 뒤로 물러나 다음 차를 기다리고 있었다.
예의 차분한 미소를 잃지 않고 말이다.
그 미소의 의미는 무엇일까.
스스로 무안함을 잊기 위한 것인가.
각박한 사람들의 정신적 불구에 대한 비웃음인가.
그러나, 정녕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장애인에 대해 관심을 갖자는 것이 아니다.
어렵고 답답한 일을 당하여서도 시종 차분함과 미소를 잃지 않는 소녀의 여유 있는 삶의 자세를 배우고자 할 따름이다.
최준영<서울 노원구 상계3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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