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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 중앙경제 새해특집] 한국 경제 5대 키워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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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올해 한국경제는 외환위기 이후 또다른 전환점을 맞고 있다. 수출이 잘돼 부분적인 경기회복 기미가 나타나고는 있지만 기업들은 여전히 투자를 꺼리고 국민들은 좀처럼 지갑을 열려 하지 않는다. 매년 30만명씩 신규 노동인력이 쏟아지고 있지만 일자리는 오히려 줄어들어 심각한 사회문제로 떠오른 지 오래다. 올해 산적한 문제를 해결하지 못할 경우 한국경제의 성장엔진이 완전히 꺼져버릴지 모른다는 걱정도 나온다. 한국경제가 반드시 풀고 넘어가야 할 다섯가지 문제를 살펴본다.

*** 투자 - 정책일관성·투자심리 회복이 우선

투자활성화는 2004년 한국경제의 핵심 과제다. 만약 올해 투자가 살아난다면 수출호조와 더불어 한국경제를 되살리는 견인차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추세를 볼 때 투자가 이른 시일 안에 회복되기는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 설비투자는 2003년 한 해에만 11월까지 연평균 5%나 줄었다. 더 큰 문제는 설비투자의 선행지표인 국내기계수주도 하락세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점이다. 2003년 들어 국내 기계수주는 큰 폭으로 줄고 있으며 11월에만 11.2%나 감소했다.

반면 기업의 '설비투자압력'은 커지고 있다. 재경부에 따르면 2분기에 마이너스(-0.2)를 기록했던 '설비투자 조정압력'이 3분기엔 플러스(0.4)로 돌아섰다.

설비투자압력이란 생산증가율에서 생산능력증가율을 뺀 것으로, 수치가 플러스(+)면 설비투자를 늘려야 한다는 압력이 커진다는 뜻이다. 지난해 11월에는 생산증가율이 4.7%였지만 생산능력 증가율은 3.2% 증가하는 데 그쳤다. 그러나 기업들은 투자 대신 공장만 돌린다. 제조업 평균가동률은 지난해 말 80%선으로 호황일 때 수준이다.

이에 따라 정부는 2004년 정책과제의 핵심으로 '투자활성화'를 설정하고 ▶토지 관련 규제의 대폭 완화▶외국인투자 유치를 위한 세제지원 확대▶외국투자가에 대한 서비스 체계 개편 등을 추진할 계획이다. 재정경제부 박병원 차관보는 "임시투자세액공제 적용기간을 연장하고 사회간접자본 투자에 대한 세제지원을 강화하는 등 정부가 쓸 수 있는 모든 정책수단을 동원해 투자활성화를 꾀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정책의 일관성 없이 상황에 따라 정책기조가 왔다갔다하는 불확실성이 걷히지 않는 한 투자심리가 회복되기 힘들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노사관계 안정과 함께 정부가 정책의 일관성을 유지한다는 미래 청사진을 확실히 보이라는 주문이다.

김종윤 기자 <yoonn@joongang.co.kr>

*** 노사 관계 - 노사 관계 로드맵·주5일제 앞길 험난

노사관계는 올해도 험난한 행로가 예상된다. 노사관계 법.제도 선진화방안(로드맵)과 주5일제 실시 등 어려운 과제가 잔뜩 쌓여 있기 때문이다.

우선 정부가 마련한 노사관계 로드맵을 둘러싸고 노사 갈등이 심할 것으로 우려된다. 노조 측은 로드맵에서 직장폐쇄.정리해고의 요건을 완화하는 부분이 근로조건을 악화시킬 수 있다고 주장한다. 반면 사용자 측은 로드맵에 나온 대로 통상임금에 보너스.수당을 포함하면 임금이 크게 오르게 된다고 반발하고 있다.

노사정위원회는 최근 로드맵에 대한 논의를 중단하고 오는 6월께 17대 국회가 구성되면 다시 논의하기로 했다. 그러나 논의를 재개하더라도 노사 양측의 입장차이가 워낙 커 합의를 이끌어내기가 쉽지 않을 전망이다.

노사정은 로드맵 논의를 연기하는 대신 올 상반기 중에 '일자리 창출을 위한 사회적 대타협'을 추진하기로 했다. 상대적으로 합의가 쉬운 것부터 추진하겠다는 얘기지만 자칫 실질적인 내용이 없이 구호에만 그칠 것으로 우려된다. 노사관계 개혁이 실패한다면 정부가 공언한 '기업하기 좋은 나라'는 물거품이 될 가능성이 크다. 이렇게 되면 기업들이 해외로 빠져나가는 산업 공동화 현상도 가속화할 전망이다.

오는 7월 공기업.금융회사와 1천명 이상 사업장에서 시행되는 주5일제에 따른 휴가.임금 등 근로조건 변화를 놓고 노사 간에 치열한 줄다리기가 예상된다. 사측은 주5일제가 되면 휴일이 늘어나므로 월차휴가를 폐지하고 연차휴가를 줄이는 게 당연하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노측은 연월차 수당이 줄어들 것을 우려해 '임금삭감 없는 주5일제 실시'를 외치고 있다.

오는 4월 국회의원 총선거도 노사관계에 큰 변수다. 표를 의식한 정치권에서 노측의 요구를 외면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노측도 이 점을 최대한 활용해 춘계 투쟁의 강도를 한층 높일 것으로 예상된다.

주정완 기자 <jwjoo@joongang.co.kr>

*** 가계 빚 - 소비회복의 열쇠… 더 늘진 않을듯

새해 우리 경제가 얼마나 살아나느냐는 소비회복 여부에 달려 있다.

소비회복은 사상 최대 규모인 가계 빚을 큰 무리없이 줄이면서 신용불량자 문제를 잘 해결하느냐가 관건이다.

전문가들은 늘어난 가계 빚과 신용불량자 때문에 새해에 소비가 크게 늘어나기는 힘들겠지만 지난해보다는 다소 나아질 것으로 전망한다.

오석태 시티그룹 이코노미스트는 "지난해 1, 2분기에 각각 전분기 대비 마이너스 증가율을 보였던 한국은행의 민간소비동향이 3분기에는 1.2% 증가했다"며 "가계 빚과 신용불량자 문제가 소비의 회복세를 어느 정도 제한하기는 하겠지만 회복 자체를 막지는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러나 내수가 회복되지 않고 가계부실이 계속되면 결국 금융부실로 이어져 우리 경제에 상당한 부담을 줄 가능성도 여전하다.

지난해 3분기 말 현재 가계 빚(대출+외상구매)은 4백39조9천억원에 달한다.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7% 늘어났지만 지난해 상반기(15%)에 비하면 그래도 줄어든 것이다. 가계 대출의 증가세가 둔화되고 신용카드를 통한 외상구매가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부동산 경기의 침체로 부동산 담보대출이 계속 줄어들고 은행과 신용카드사들의 개인신용 관리가 강화되면 가계 빚이 앞으로 현 수준에 머무르거나 점차 감소할 것으로 전망된다.

그러나 경기 회복에 대한 기대감으로 실세금리가 오르면서 은행대출 금리가 연 6%대 초반까지 치솟아 이자 부담이 더욱 커지고 있어 가계부실의 우려는 여전하다.

지난해엔 11월 말 현재 3백64만8천명에 달했던 신용불량자는 올 상반기까지는 계속 늘어나 4백만명대에 도달할 것으로 보인다.

은행 문턱이 높아지고 신용불량자들의 도덕적 해이가 만연하면서 새해에는 신용불량자가 더 늘어날 전망이다.

정재홍 기자 <hongj@joongang.co.kr>

*** 청년실업 - 유럽식 '저성장 고실업' 고착화 우려

올해도 대학졸업생 등 청년층은 일자리를 구하기가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수출이 늘면서 겉으로 드러나는 경제 지표가 좋아진다 하더라도 서비스업 등 내수 관련 산업이 살아나지 않고선 일자리가 늘어나기 어렵기 때문이다. 정부가 추진하는 '일자리 나누기'정책도 근본적인 대책은 못된다는 지적이다.

지난해 11월 15~29세 실업자 수는 39만4천명으로 1년 새 8만1천명이 늘었다.

청년 실업률은 전체 실업률(3.4%)의 배가 넘는 8%에 이른다.

취업난을 피하려고 군대에 가거나 대학 졸업을 1~2년씩 늦추는 통계에 잡히지 않는 실업까지 감안하면 청년 실업자가 1백만명에 육박할 것이란 추정까지 나오고 있다.

이대로라면 20대 태반이 백수라는 뜻의 '이태백'이란 신종 유행어가 쉽사리 사라지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삼성경제연구소 이상우 연구원은 "고부가 가치 산업을 중심으로 산업구조가 개편되고 있는 점 등을 감안하면 올해 청년 실업률은 7% 후반대에 머무를 것"이라고 전망했다.

청년 실업을 단순히 경기에 따라 실업률 숫자가 오르고 내리는 문제로만 봐서는 안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지난해 우리 경제가 저성장.고실업의 조짐을 보였기 때문에 유럽처럼 청년 실업이 고착화될 수 있다는 우려다. 경기가 좋아진다는 올해에도 청년 실업 문제가 개선되지 않는다면 이런 우려가 현실이 될 수도 있다. 전문가들은 또 젊은 노동력을 활용하지 못하면 숙련된 기술의 전수가 어려워지고 기업의 인력체계가 무너져 사회적 부담이 크게 늘 수 있다고 지적한다.

한국노동연구원 정진호 동향분석실장은 "사회적인 관심이 대졸 실업자에 집중되고 있지만 저소득층의 확대 재생산으로 이어질 수 있는 저학력 청년층의 실업에 대한 대책도 시급하다"고 말했다.

김영훈 기자 <filich@joongang.co.kr>

*** 금융 구조조정 - 카드 부실·금융투신 M&A '난제 첩첩'

지난해까지의 금융구조조정이 은행권에 초점이 맞춰졌다면 2004년엔 제2금융권이 구조조정의 '태풍의 핵'으로 부상할 전망이다.

우선 지난해 LG카드 매각이 수포로 돌아감에 따라 카드사 부실 처리가 새해 금융계의 첫 화두(話頭)로 등장하게 됐다. LG카드는 연초부터 갚아야 할 카드채와 자산담보부증권(ABS)이 한꺼번에 몰린다. 이 때문에 1월 초까지 매각이든 채권단 공동관리든 처리방향을 확정하지 못하면 LG카드는 다시 자금위기에 몰리고 이에 따라 금융시장도 요동칠 가능성이 크다.

한국투자증권과 대한투자증권.대우증권.SK증권 등의 매각은 증권.투신업계에도 인수.합병(M&A)을 통한 대형화 바람을 몰고 올 것으로 보인다. 정부도 국내 증권사들의 덩치가 작아 외국계와 경쟁하기 힘들다고 보고 대형화를 적극 지원할 태세다. 대형 증권사 외에 우리금융지주와 신한금융지주.하나은행 등도 증권사 인수에 나설 계획이다.

투신업계는 외국계의 공세가 거세다. 현대투신증권.운용을 인수한 미국계 푸르덴셜이 제일투신증권.운용까지 합병할 경우 단번에 투신업계 1위로 부상한다. 여기에 세계적인 투신사인 미국계 피델리티가 내년 상반기 국내에 투신운용사를 설립할 계획이다. 국내 증권사도 미래에셋이 SK투신.세종투신 인수를 추진 중이며 키움닷컴증권 등 투신사가 없는 증권사들도 투신사 인수를 원하고 있어 투신업계는 외국계와 국내 증권사의 인수경쟁이 치열할 것으로 보인다.

잇따른 온라인 자동차보험사의 등장으로 시장을 잠식당한 중소형 손해보험사들도 살아남기 위해 M&A에 나설 전망이다. 이미 2~3개 중소형 손보사가 합병을 모색 중이다.

은행권에선 한미은행.제일은행.우리금융지주 등의 지분 매각이 예정돼 있다. 현재로선 외국자본의 독주가 예상되지만 이헌재 전 재경부 장관이 이에 대항하기 위한 사모펀드의 설립을 추진 중이다.

정경민.김준현 기자 <jkm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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