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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 대통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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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그놈들 참, 신기하기도 하다. 갑자기 부리로 무언가를 순식간에 낚아챈다. 3㎜나 될까. 사람 눈에는 보이지도 않을 벼물바구미인 듯하다. 벼 사이를 요리조리 줄 지어 다니는 모습도 여간 귀여운 게 아니다. ‘평온하게 보이지만 논물 속에선 죽어라 하고 물갈퀴를 젓고 있겠지.’ 이런 생각을 떠올리니 웃음이 절로 난다.

 지난달 하순 경기도 용인시 원삼면 두창리. 논에서 놀고 있는 오리들을 보며 논두렁을 이리저리 걷다가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했다. 나란히 놓인 두 논의 차이가 확연히 들어온 것이다. 한쪽 논에 고인 물은 맑았다. 다른 쪽은 오리들이 휘젓고 다니느라 흙탕물이었다. 그런데 벼의 생김새가 아주 달랐다. 물이 맑은 논의 벼는 곱게 자라긴 했지만 흙탕물 논의 벼보다 키가 훨씬 작았다. 게다가 흙탕물 논의 벼 줄기는 산발(散髮)한 듯한 모습이었다. 마치 화폭에 난(蘭)을 쭉쭉 치듯.

 “분얼(分蘖)이 참 잘됐네요.”

 원삼농협 김동욱 과장이 말했다. 분얼이란 식물 줄기 밑동에 있는 마디에서 곁눈이 발육해 줄기와 잎을 형성하는 것을 말한단다. 그러자 한 농민이 거든다.

 “맑은 논물엔 5월 2일 모를 심었고, 흙탕 논물엔 20일 뒤에야 모를 심었지. 늦게 심은 곳의 벼가 더 튼실하게 자랐으니 신기하지 않나요?”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답은 ‘자연의 농사꾼’ 오리에 있었다. 오리들은 해충을 기막히게 잘 잡아먹을 뿐더러 쉴새 없는 갈퀴질의 물살로 벼 뿌리를 마사지하며 벼가 튼튼하게 자라도록 해줬다. 또 수시로 논에 똥을 누고 다녔다. 똥은 그대로 천연 거름이 됐다.

 이것이 유명한 ‘오리농법’이다. 원삼농협 이강수 조합장은 “오리들이 헤엄칠 수 있도록 일반 농사 때보다 모를 적게 심지만, 이삭이 많이 달리고 농약 오염도 없어 결국 수확량은 비슷하면서도 친환경 쌀이 나온다”고 설명했다.

 순간 오리농법이 주는 몇 가지 시사점이 머리를 스쳤다.

 ①클린 이미지=오리가 다 알아서 하니 독한 농약이 필요 없고 오염 걱정도 없다

 ②혜안(慧眼)=조합장은 “오리는 눈이 밝다”고 말했다. 눈 밝은 오리들은 그래서 낮이고 밤이고 해충을 잘 잡는다.

 ③내실=맑은 논물은 보기엔 좋았다. 하지만 겉만 번지르르한 것은 금물이다. 흙탕 논물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벼의 크기에 차이가 있었다.

 어떤 교훈이 더 있을까. 불필요한 규제 솎아내기다. 힘들여 김을 매지 않더라도 흙탕물 속의 잡초들은 햇빛을 빨아들이지 못해 자연스럽게 맥도 못추고 죽어버린다. 또 오리들을 자세히 보니 덩치가 작았다. 부화해서 일주일이 갓 지난 새끼들이다. 원삼농협 오태환 전무는 “다 자란 오리를 넣으면 모를 망친다”고 말했다. 역시 작은 정부가 좋다. 이번에는 논에 투입되는 오리의 종류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조합장은 “해충을 잘 잡으려면 청둥오리의 야성이 필요하다. 그렇다고 청둥오리를 그대로 투입했다간 날아가 버린다. 날지 못하게 해야 한다. 그래서 청둥오리와 집오리의 잡종이 사용된다”고 말했다. 청둥오리 근성과 집오리 차분함의 결합, 바로 균형 잡힌 시각이다.

 마지막으로 궁금한 게 있었다. 이삭 팰 때가 되면 오리의 역할은 끝난다. 그러면 오리의 운명은?

“잘 먹인 뒤 식용으로 팔죠.”

 김동욱 과장의 대답이다. 농가에 돈벌이가 되고, 오리고기 애호가들에게는 별미가 제공된다. 죽어서까지 인(仁)을 행하는 셈이다. 지도자가 되겠다는 사람들을 놓고 도덕성 검증 공방이 시끄럽고 청둥오리의 철새 근성도 비난받는 요즘이라 들린 환청(幻聽)일까. 논두렁을 나서자 오리는 “꽉 꽉”댔다. 마치 “마땅한 대통령감이 없거들랑 차라리 나를 뽑지 그래”하는 듯했다.

정선구 경제부문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