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핏줄.원한보다 강한사랑- 트리스탄&이졸데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16호 14면

트리스탄과 이졸데의 이야기는 서구 연애문학의 원형이 된 켈트족의 전설이다. 이것을 ‘로빈훗’ ‘몬테크리스토 백작’ 등을 통해 고전의 대중적 영화화에 재능을 보여온 케빈 레이놀즈 감독이 사실적인 시대극으로 옮겼다. 이 영화 ‘트리스탄 & 이졸데’에서는 ‘사랑의 묘약’이나 용은 사라지고, 로마 멸망 후 분열된 영국을 배경으로 정치적 책략 속에 희생되는 비극적인 사랑이 펼쳐진다.
모든 연애담에는 사랑하는 사람들과 그들의 사랑을 가로막는 장애가 있다. 그중에서도 근친관계와 원한은 가장 강력한 장애다. 적국인 아일랜드와 콘월의 평화를 위해 콘월 왕의 부인이 되는 아일랜드 공주와 콘월 왕의 양자 트리스탄의 사랑은 이 두 가지 장애를 모두 지니고 있다는 점에서 극적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 영화에서는 중대한 장애요소가 하나 더 있다. 그것은 트리스탄의 양부인 콘월 왕 마크가 나무랄 데 없이 멋진 사람이라는 것. 마크의 정당성과 카리스마를 넘어서 트리스탄과 이졸데의 사랑이 감동을 불러일으키기 위해서는 그들의 사랑이 그 무엇으로도 막을 수 없는 열정임을 보여주어야 한다.
그러나 이 영화에서 가장 부족한 부분이 바로 그 ‘열정’이다. 트리스탄은 시종일관 우유부단한 얼굴로 이졸데가 이끄는 대로 움직인다. 이때 마크를 속이며 두 사람이 은밀한 만남을 이어가는 것은 폭풍 같은 열정이라기보다는 지지부진한 미련 같아 보인다. 이로 인해 이 영화는 사실적인 개연성에 바탕을 둔 매끈한 이야기를 구성하는 데는 성공하지만, 트리스탄과 이졸데 이야기의 핵심인 ‘운명적 사랑의 열정’을 구현하는 데에는 실패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에는 원형적인 이야기의 보편성을 확인하는 즐거움이 있다. 이졸데가 트리스탄을 구하는 것에서는 유화와 해모수가 떠오르고, 트리스탄과 이졸데의 관계를 보면서는 호동왕자와 낙랑공주가 떠오르기 때문이다. 글 박유희(영화평론가)

★★☆감독 케빈 레이놀즈 주연 제임스 프랭코ㆍ소피아 마일즈 러닝타임 125분

--------------------------------------------------------------------------------영화평론가이자 국문학박사인 박유희씨는 영화와 문학에 대한 글을 쓰고 있으며, 고려대와 서울예대에서 문학과 영화학을 강의하고 있습니다.

★표는 필자가 매긴 영화에 대한 평점으로 ★ 5개가 만점입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