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까지 진실캐는 미 사회/박준영 뉴욕특파원(취재일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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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요즘 미국 신문에는 짧게는 한달전,길게는 30년이 지난 일들이 오늘의 문제인양 계속 보도되고 있다.
우리처럼 긴 회고록이나 비화같은 것이 아니라 과거사 가운데 진실이 모두 밝혀지지 않았다고 생각되는 부분에 대한 새로운 주장과 조사결과들이 계속 관심을 모으고 있는 것이다.
그 가운데 몇가지만 꼽아 보면 대통령선거 직전 빌 클린턴과 그의 어머니에 대한 국무부의 여권기록 조사에서부터 5,6년 전의 이란­콘트라사건 등이 있다.
미 국무부는 요즘 대통령선거가 끝난 뒤에도 클린턴후보의 여권기록 조사에 누가 관련되었는지 조사하느라 정신이 없다.
선거가 끝난뒤 조지 부시대통령이 공무원의 선거개입과 선거에 정부의 정보를 이용하려 한 책임을 물어 여권담당 부차관보를 해임시켰지만 국무부는 자체조사를 계속해 제임스 베이커비서실장을 비롯한 백악관이 이를 사전에 알고있었다는 사실까지 밝혀내고 있다.
우리 같으면 선거가 끝났고,더구나 부시가 졌으니 책임인사로 사건을 마무리 하자는 여론이 나올 수 있고 피해자이자 당선자인 클린턴이 용서할 수도 있을 법 하다.
그러나 정치권은 이 조사에 개입하지 않고 있고 부시대통령·베이커 전국무장관도 무슨 특별한 입장을 밝히거나 은폐를 지시했다는 보도는 없다.
부시가 임명한 사람이 장관으로 있는 국무부는 권력의 눈치를 보지않고 해야할 일을 하고있는 것이다.
이란­콘트라사건은 사건이 표면화된지 6년이 지났음에도 조사는 여전히 계속되고 언론도 비중을 두고 보도하고 있다.
백악관 안보보좌관들이 국법을 무시하고 이란에 무기를 불법판매한 자금을 나카라과 우익반군에 지원한 이 사건은 3년전 관련자 처벌 등 대충 마무리 되었으나 부시대통령을 비롯한 어느 수준의 고위인사까지 관련되어 있느냐가 관심의 대상이 되어왔다.
부시대통령이 사전인지를 부인해온 이 사건은 부시의 사전개입을 확인하는 캐스퍼 와인버거 전국방장관의 증언과 부시의 여행자료들이 대통령선거 직전 발표되기도 했다.
신문 사설 등은 진실이 숨겨지면 사술이 우세해져 역사와 건강한 사회를 해친다고 말하고 있다.
이같은 미국적 분위기는,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너무도 많은 사건들이 진실이 밝혀지는 것과는 상관없이 시간만 지나면 잊혀지는 우리 사회를 되돌아 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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