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대사의 해괴한 「정신대발언」/김진국 통일부기자(취재일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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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정신대의 「진상」이란 끝이 없습니다. 언제까지 걸릴지 알 수 없습니다. 우리는 어디까지를 원하는지 분명히 선을 그어야 합니다.』
정권인계에 앞선 이상옥외무장관의 주요공관장 일시귀국조치의 일환으로 들어온 오재희 주일대사는 한일간의 과거사 문제가 계속 현안으로 남아있는데 대해 상당히 우려하며 이처럼 「호소」했다.
그는 『미야자와(궁택희일) 일본총리가 지난해 1월 방한했을때 여섯번이나 정신대 문제를 사과했는데 이건 진심이라고 생각한다』며 일본측의 성의와 진상조사 활동에 대해 평가했다.
그러면서 그는 정신대의 진상을 밝혀야 한다는 국내 요구에 『정신대의 진상은 어떤 여인이 어디서 점심은 무엇을 먹고,옷은 무엇을 입었는가 하는 식으로 끝이 없다』고 했다. 그의 말에는 은연중에 「중요하지도 않은 부분을 물고 늘어지고 있다」는 인식이 배어있다. 그것은 바로 정신대 문제에 접근하는 일본정부의 자세와 똑같다. 그는 한국측의 입장을 일본정부에 전달해야 하는 총책임자다. 그런데 그 스스로 우리가 무엇을,왜 요구하는지 모르겠다고 한다면 그 결과는 뻔하다. 물론 인근 우방으로서 과거사에 얽매여 미래지향적 발전을 못한다면 바람직한 일이 아니다. 그러나 일단 진상을 밝히자는 정부입장이 정해졌으면 우리 입장을 정확히 전달,일본측과 협조해 성의있는 조사를 하고 어떤 방식으로든 매듭을 지어야 할 일이다.
더군다나 한국인 희생자들이 증언한 「공권력에 의한 강제동원」도 일본정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며 인정하지 않고 있다는 기자들의 지적에도 『정부조사는 철저한 증거주의기 때문에 「일방적인 증언」은 인정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 부분은 일본정부가 조사해도 증거를 찾을 수 없다는 겁니다. 덮어놓고 당사자의 말만 믿고 어떻게 인정합니까. 그건 공적인 조사를 하는 우리 정부라도 마찬가지입니다. 일본정부가 고의적으로 강제동원에 대한 자료를 감추고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런 자료를 찾거나 증언을 확인하려는 한국정부의 적극적인 활동이나 전쟁중 자료를 쌓아놓고도 공개할 기색이 없는 일본정부의 소극적 자세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그가 일본의 입장을 잘 반영해 양국간 교량역할을 해야 할 처지에 있는 것은 알고있다. 하지만 그것도 정도의 문제일 것이다. 이런 사람이 정신대 문제의 교섭창구를 맡고있는 이상 해결을 위한 적극적인 노력을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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