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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역사 짧아 아직은 먼길|노벨 과학상에 도전한다 신년특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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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포항공대 중앙광장에 들어서면 1.2m 높이의 6개의 대리석 좌 대를 볼 수 있다. 이 좌 대에는 만유인력을 발견한 뉴턴, 전자기학의 선구자인 맥스웰, 상대성이론의 창시자인 아인슈타인, 발명가 에디슨 등 네 명의 흉상이 자리하고 있고 가운데 두개의 좌 대는 비어 있다. 이름하여「미래의 한국과학자 상」이다.
하나는 국내에서 활동중인최초의 한국인 노벨상 수상자를 위한 자리며 또 하나는 노벨상에 관계없이 몇 백년, 몇 전년에 한 사람 나올까 말까 한 세계 최고의 한국과학자를 위해 예비한 자리다.
때때로 밤늦은 시간에 학생들이 올라앉아 밤하늘의 별을 쳐다보며 장래를 설계하는 이 좌 대에는 언제쯤이면 주인이 나타날까.
그러나 한국인 모두가 염원하는 과학분야 노벨상은 아무래도 이번 세기 안에는 힘들다는 것이 일반적인 전망이다. 어떤 전문가는 노벨상이란 어느 날 갑자기 굴러 들어오는 행운은 아니라며 우리 여건상 앞으로 30년 안에는 국내학자의 노벨상 수상은 불가능하다고 장담하기도 한다.
그동안 불리·화학·생리의학 부문 노벨상 수상국가(출생 국 기준)는 모두 30개국에 이르고 있다. 우리의 국력으로 봐서는 하나쯤 나올 때도 된 것 같은데 우리는 아직도 홈런하나 못 치고 이따금씩 단타만 나오고 있다. 서울대 자연대 권숙일 학장(물리학)은 노벨상을 기대하기에는 우리 대학의 연구실 역사와 전통이 너무 짧다고 말한다.
일본은 명치유신 이후 1870년대에 대학교육을 강화하기 시작했으며 그후 약 80년 만인 1949년 최초의 노벨상수상자(유카와 히데키·물리학)가 나왔었다. 1920년대에 이미 기초과학분야에서 세계적인 수준에 도달했던 일본에 비해 우리나라는 연구실의 역사가 너무나 짧은 것이다.
외국에서 학위를 받고 귀국한 학자들을 중심으로 연구실업적이 나오기 시작한 것은 70년에 들어서이며 외국에서 인정해 줄 만한 제대로 된 연구 기기가 들어오기 시작한 것은 80년대부터다. 따라서 우리의 기초과학 분야 연구실 역사는 10년, 길게 잡아야 20년에 불과한 셈이다.
포항공대 김호길 학장(물리학)은 노벨상정도의 업적은 기초과학연구가 활성화되고 있는 풍토에서만 가능하다며 이를 위해서는 과감한 투자와 대학교육의 개혁이 이뤄져야 한다고 말한다. 그는 10개 정도의 대학이 세계적 수준으로 육성되고 이들 대학들이 서로 경쟁하는 가운데 노벨상 감의 연구들이 나올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돈도 돈이지만 지도할 중진학자가 부족한 것도 노벨상에 대한 기대를 멀게 하는 이유가 된다 .
투자가 적으니 시설도 엉망일 수밖에 없다. 가장 시설이 좋다는 서울대의 경우 교수들의 연구시설은 어느 정도 갖춰진 편이나 학생들의 교육시설은 창피할 정도로 빈약하다. 기초과학에의 투자를 아까운 것으로 생각하고 과학기술부문이 늘 투자 우선 순위에서 밀리고 있는 한 노벨상에의 길은 멀 수밖에 없는 일이다.
대학입시제도나 대학의 교육도 한국학생의 창의력을 키워 주지 못하는 요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한양대 김용운 교수(수학)는 혁신적인 창의력을 요구하는 학문세계에는 나름대로의 전통과 우수한 학자들이 근접분야를 빈틈없이 메우고 있어야 한다고 말하고 천리를 달릴 수 있는 명마 감들을 둔마로 바꾸고 있는 현재의 교육제도를 개혁하지 않는 한 한국에서의 자생적인 노벨상은 기대할 수 없다고 잘라 말한다.
그러나 이러한 어려운 여건에서도 국내외에서 각 분야에 걸쳐 세계 석학들과 어깨를 겨루며 연구에 정진하고 있는 우리 과학자들도 많다.
현재 노벨상 후보로 가장 가까이 접근해 있는 과학자로는 미국 캘리포니아대(버클리 캠퍼스) 화학과 교수로 있는 김성호 박사(56·생 물리화학). 그를 두고 국내 학자들은 홈런 성 3루 타를 여러 개 친 가장 유력한 화학상 또는 생리·의학상 후보 감으로 꼽고 있는데 실제로 그는 지난 83년 이후 버클리 대학으로부터 몇 차례 노벨상 후보로 추천되기도 했다. 김 박사는 서울대 화학과와 미국 피츠버그 대를 졸업했다.
로렌스버클리 연구소 화학생체역학 연구부장이기도 한 김 박사의 최근 업적은 발암유전자의 입체구조를 밝힘으로써 암 치료와 예방을 위한 실마리를 제공했다는 점이다. 즉 인체 암을 일으키는데 가장 관련이 깊은 라스(ras) 단백질의 3차원적인 입체구조를 처음으로 밝힘으로써 암세포만 공격하는 새로운 약제개발에 커다란 단서를 제공한 것이다. 이에 앞서 74년에는 유전암호의 번역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t-RNA의 입체구조를 밝히기도 했다. 이러한 공로로 지난 89년에는 일본 황실이 제정한 다카마스 암 연구 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이 밖의 재외과학자로 프랑스 원자력 청 산하 샤클레 연구소 수석연구부장으로 있는 노만규 박사(57·핵물리학), 독일 뮌헨공대의 김재일 박사(57·화학), 미국 유타대의 김성완 박사(53·생체고분자학), 미국 콜롬비아대의 이원용 박사(50·입자물리학), 미 국립보건 원에서 세포신호전달체계를 연구중인 이서구 박사(50) 등도 국내매스컴에 자주 소개되고 있는 이름이다.
특히 노 박사는 70년대 초 메손(중간자)을 볼 수 있는 특수한 방정식을 포함한 새 이론을 『핵물리학』지에 발표해 큰 반응을 일으켰으며 이 논문은 그후 메손의 확인 등 입자물리학 실험분야에 큰 기여를 했다.
국내에서는 여러 가지 불리한 연구환경으로 장타보다는 단타 위주의 안타들아 자주 나오고있는 편이다.
저명한 국제학회 지에 수준 높은 논문들을 활발히 발표하고 또 인용되고 있는 학자들로는 우선 이런 자격을 기준으로 하는 한국과학상(한국과학재단주관) 수상자를 꼽지 않을 수 없다. 그런 점에서 서울대자연대 김진의 교수(47·물리학)가 첫 손으로 꼽힌다.
김 박사는 보이지 않는 액시온을 전세계에서 처음으로 창안했을 뿐 아니라 이 액시온 이론을 가장 깊이 있게 연구하고 있는 학자로 지난 87년 한국인으로는 고 이휘소 박사에 이어 두 번째로 세계적 물리학회지(Physics Reports)에「아주 가벼운 액시온 이론 및 현상연구」라는 논문을 발표해 국제적으로 큰 인정을 받고 있다. 현재 보이지 않는 액시온을 관측하려는 노력이 전세계적으로 행해지고 있어 이것이 발견만 된다면 가능성도 충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김 교수는 이같은 업적으로 제1회 한국과학상 대상(87년)과 제2회 호암상(92년)을 수상하기도 했다.
한국과학상 연구장려상을 수상한 학자(수학부문 제외)로는 서울대의 서정헌(45·화학)·박상대(56·생명과학)·조용민(49·물리학)·박영우(41·물리학)·정진하(42·생명과학)교수, 한국과학기술원 심상철 교수(56·화학), 고려대 이호왕(65·생명과학)·진정일(51·화학)교수, 연세대 옥항남 교수(53·물리학)등 이 있다. 이밖에 대상후보로 올랐던 한국과학기술원 전무식 교수(61·화학)와 과학자 공로연금 첫 수혜자인 한국과학기술연구원 윤한식 박사(64·화학)도 물의 환경 설을 포함한 물의 구조와 성질, 새로운 결정체 겔크리스틀의 발견 등으로 국제적 명성을 갖고 있는 학자들이다. <신종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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