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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귀종 1백여마리 기르는 이희훈씨의 「예찬론」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3면

◎“닭처럼 부지런하게 뛰어야죠”/어둠 밝혀주는 청음을 곳곳에/뛰어난 끈기와 투지 본받을만/1년정도 정주면 주인 목소리·발걸음 알아봐
『꼬끼오­꽤액­꼬오… 꼬오­옥….』
닭띠해인 93년 계유년의 새해가 밝았다.
『올 한해도 모든분들이 지상에서 가장 먼저 깨어나 목청껏 새벽을 불러오는 닭처럼 남보다 앞장서서 부지런히 뛰어 알찬 결실을 거둘 수 있길 바랍니다.』
닭의 「덕」에 반해 6년전부터 닭기르기에 전념하고 있다는 이희훈씨(43·현대축산출판사 상무·경기도 광명시 철산2동)는 새해아침 입을 열자마자 닭 예찬론을 편다.
『아득한 태고적 인류에 가장 무서운 것이 무엇이었겠습니까. 어둠·주림·추위가 아니었을까요. 그런 인류에 매일 새벽 동트기전 울려퍼지는 닭의 우렁찬 청음은 바로 희망의 약속이며 공포를 몰아내고 삶의 용기를 북돋워주는 축복과도 같았을 겁니다.』
이씨는 김알지가 태어난 신라의 계림,김영삼대통령당선자가 태어난 대계마을 등을 예로 들며 큰인물 출생뒤에는 닭이 관련된 경우가 부지기수라 했다.
「어둠을 밝힌다」는 광명시에 살기 때문에 풍수지리로도 닭과 인연이 많다고 강조하는 이씨는 건국대 축산과를 졸업한후 새마을신문 기자로 10년동안 근무하기도한 이색경력의 소유자. 6년전 우연한 기회에 닭기르기에 관심을 갖게돼 현재 폴리시·곱슬자보·샤모·긴꼬리닭 등 15개 희귀품종 1백여마리를 기르고 있다. 그가 상무로 일하는 현대축산출판사에서는 월간 『현대양계』라는 전문잡지도 내고 있어 그의 하루생활은 모두 닭과 관련돼 있다.
『자질구레한 뒤치다꺼리는 물론 각종 사료를 때맞춰 먹여야하고 새벽마다 홰치고 울어대는 소리에 잠까지 설치며 이웃들의 항의를 받는 등 닭시중(?)을 드느라 애먹은 적이 한두번이 아니지만 결코 싫증나거나 후회해본적은 없습니다.』
비둘기·돼지 등에 이어 가장 늦게 기르기 시작했지만 이젠 그 어느 동물보다 애착이 가며 정 또한 깊이 들었다는 이씨는 『닭은 기른지 1년이 지나면 주인의 음성·발자국 소리까지 알아봅니다. 흔히들 닭은 머리가 비었다는 등의 말들을 하지만 사실이 아닙니다. 우뚝 솟은 벼슬은 문,갈라진 발톱은 무,먹이를 다투지 않음은 인,물러서지 않음은 용,매일 새벽 시간을 알림은 신이라고 해서 「오덕」으로 치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어느짐승보다도 더한 투지와 집념을 보여줍니다.』
이씨가 기르는 닭중엔 그래서 60여마리가 「싸움닭」 샤모다.
70년대후반 TV시리즈 「뿌리」에서도 소개된바 있는 닭싸움은 우리나라의 경우 사행행위로 여겨져 해방이후 극히 일부에서 동호인들 사이에 민속오락으로 명맥을 잇고 있으나 세상살이에 깨우침을 주는 대목이 많다고 이씨는 주장한다.
『복싱선수처럼 줄기차게 파고드는 인파이터,슬슬 외곽을 돌며 공격하는 아웃복서도 있죠. 사람들 경기처럼 다운을 당하거나 위기에 몰리면 「꽥,꽥」하는 외마디소리와 함께 항복선언을 하는 반면 승자는 「꾸꾸꾸…」하고 의기양양하게 링을 몇바퀴 돌곤 합니다.』
이씨는 사람이 살다보면 싸움닭처럼 투지와 집념을 불태워야할 고비도 많으며 선진문턱에서 주저앉아 있는 꼴인 우리나라 형편에서는 더욱 그렇지 않겠느냐고 웃는다.
우리나라 대통령의 문장으로 쓰고있는 봉황도 따지고 보면 옛사람들이 닭을 좀더 귀족풍으로 신비스럽게 변조해 놓은 상상물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하는 이씨는 우리사회에 알게모르게 퍼져있는 닭에 대한 비하풍조가 서운하다고 했다. 단적인 예로 이웃 일본의 경우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닭종류만 18종이 넘는데 우리나라는 오골계 단하나만 기념물로 지정돼 있는 사실을 든다. 무엇보다 현실에서 양계를 포함한 국내 축산업이 주기적으로 되풀이되는 수급불균형·가격파동 때문에 국제경쟁은 커녕 존립기반조차 흔들리는 상황이 안타깝다고 했다.
축산부문에서도 외국산 원료(사료)에 의존한 대량사육방식이 아니라 국내특산 고가품전략으로 가야만 치열한 국제경쟁시대에 살아남고 우리자리를 확보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32년만에 열리는 문민새시대,그러나 안팎으로 산적한 난제앞에서 우리 모두가 닭의 오덕을 본받아 새역사 개척에 부지런히 뛰어야한다는 것이 「닭박사」 이씨의 새해 다짐이자 부탁이다.<봉화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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