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씨의 깨끗한 은퇴(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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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김대중후보가 사실상의 정계은퇴를 선언했다. 예상되었고 「약속」되었던 일이긴 하나 감회가 예사로울 수가 없다.
그는 『40년의 파란많았던 정치생활에 사실상 종막을 고한다고 생각하니 감개무량한 심정을 금할 길이 없다』고 말했다. 그의 이런 감회는 그의 지지자는 물론 그와 생각을 달리하고 다른 후보를 지지했던 사람들에게도 크게 다르지는 않을 것이다.
그는 국회의원직마저 사퇴하고 『평범한 한 사람의 시민이 되겠다』고 함으로써 그의 약속을 지켰고 정치지도자로서의 끝을 깨끗하게 마무리지었다. 그 자신에게도,그의 지지자들에게도 못내 아쉬움은 남겠으나 「정치인은 물러날때 물러나야 추하지 않게 된다」는 그의 판단은 옳다. 그는 진퇴를 깨끗이 하는 모범을 보임으로써 마지막으로 한번 더 우리 정치수준의 향상에 기여했다.
그와 민주당은 지난 선거기간동안에도 다른 정당에 비해선 상대적으로 훨씬 깨끗한 선거전을 전개했다. 이것 역시 그가 우리나라의 정치발전에 이바지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또 그는 패배를 겸허히 받아들인 동시에 김영삼후보의 당선을 축하하고 앞날을 축복해줌으로써 우리 정치사에 기록될 새로운 전통을 마련했다. 큰 정치인으로서의 합당한 처신이요,바람직한 태도였다.
그의 말 그대로 그의 40년간의 정치생활은 그야말로 「파란만장」이었다. 죽을 고비도 여러번 넘기는 누구보다도 혹심한 정치적 탄압을 받았고 거기에서 비롯된 부정적 시선은 이번 선거전에서도 그를 끝까지 괴롭혔다. 그러한 시선은 아직도 일부 남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모두가 그에 대해 따뜻한 박수를 보낼 시점이다. 그가 이 땅의 민주화에 이바지한 공은 결코 과소평가될 수 없다. 또 그는 척박한 정치풍토속에서도 사회의 소외세력과 진보세력의 목소리를 제도권 정치속에 반영하는데 그 누구보다도 큰 기여를 했다. 설사 정치적 견해를 달리하는 사람이라도 「다양한 존중」이라는 민주적 가치를 인정한다면 그의 기여를 비하해선 안될 것이다. 정치지도자를 퇴장시키기는 쉬워도 새로이 정치자도자를 만들어 낸다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이다. 그가 떠난 자리엔 큰 공백이 남을 것이다. 그래서 개인적으로도 혹시 마음이 흔들릴지 모르고 주위로부터의 복귀유혹도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역시 그런 유혹을 단호히 물리치는 것이 옳다. 시대의 대세는 앞으론 새로운 정치지도자를 원하고 있다. 정치지도자는 시대와 운명을 함께 하는 것이다. 그것이 정치인으로서의 숙명이라면 숙명이다.
다만 우리는 그의 정치적 경륜과 다양한 경험,그리고 지혜가 앞으로도 우리사회의 정치적 안정과 발전을 위한 밑거름으로 활용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또 그런 길도 마련될 수 있다고 믿는다. 「평범한 한 시민」으로 돌아간 김대중씨의 소망도 거기에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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