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한·칠레 FTA 연착륙 준비하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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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6개월째 국회를 표류하던 한.칠레 자유무역협정(FTA) 비준동의안의 국회 통과가 막판 진통을 겪고 있다. 만약 올해 안에 비준안이 통과되지 못할 경우 칠레 시장에서 우리가 볼 피해도 피해지만 세계의 FTA 무대에서 배제돼 가뜩이나 대외의존도가 높은 우리 경제가 뿌리째 흔들리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앞선다.

한.칠레 FTA 국회 비준이 지연되면서 그동안 전세계 30여개국과 FTA를 체결한 칠레 시장에서 한국 상품의 입지는 갈수록 좁아졌다. 칠레자동차협회(ANAC)에 따르면 올 들어 8월까지 수입한 한국산 자동차는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7.7% 줄어 들었다. 일본에 이어 2위를 유지하던 국산 자동차의 점유율도 4위로 내려앉았다. FTA 비준이 지연되면서 엄청난 부작용을 겪은 셈이다.

이와 함께 세계 통상 무대에서의 고립도 예상된다. 이는 두고두고 우리 경제의 걸림돌로 작용할 것임은 명약관화하다. 특히 이번 협정은 우리나라가 본격적으로 자유무역주의 체제로 들어가는 첫걸음이라고 할 수 있는 만큼 이번 협정을 시작으로 신속하게 세계 무역질서에 편입하지 못할 경우 세계시장에서 '왕따'신세를 면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유념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뿐 아니라 일본.싱가포르와 FTA 체결을 위한 공식 협상을 진행하고, 멕시코.동남아국가연합(아세안) 등과 FTA를 추진하기 위해서도 우선 한.칠레 FTA부터 매듭짓는 것이 급선무다.

무려 4년을 끌어 타결된 한.칠레 FTA의 국회 비준을 더 미뤄서는 안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한.칠레 FTA에 대한 국회 비준이 이뤄진다고 해서 이를 둘러싼 모든 갈등과 논란이 해소되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정부는 FTA 비준 이후 예상되는 후유증과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데 더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무엇보다 농민들이 이토록 한.칠레 FTA를 반대하는 근본 원인에 대한 깊은 성찰을 토대로 향후 대책을 강구하는 일이 문제를 해결하는 올바른 출발점이 될 것이다.

사실 이번 한.칠레 FTA에는 쌀.사과.배 등 우리 농촌에 민감한 농산물은 모두 빠져 있다. 정부도 FTA지원특별법 등을 통해 향후 10년간 농민 피해 예상액을 훨씬 웃도는 1조2천억원을 지원할 예정이다. 이를 감안하면 농민들이 FTA를 반대하는 심리의 이면에는 그동안 정책을 추진해 온 데 대한 심리적인 반감도 크게 작용한다고 봐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이런 점에서 정부로서는 이미 국회를 통과한 농특세연장법을 제외한 3대 특별법안을 신속하게 처리하는 노력을 기울이고 차질없이 이행하도록 만전을 기해야 한다. 또 농심을 안정시키고 농민들에게서 정책 신뢰를 되찾는 데 보다 힘써야 하리라고 본다. 그동안 해왔던 직접 지원 방식에서 탈피해 기술투자 확대, 바이오산업 육성 등을 통해 농촌의 자생력을 키우고 농업 구조 고도화를 유도하는 방식으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

업계도 우리 농촌의 가치와 중요성을 누구보다 깊이 인식하는 만큼 농업계와의 협력을 통해 우리 농촌의 어려움을 풀어나가는 데 지속적인 노력을 기울여 나갈 것이다.

그중 한가지 방안으로 기업과 농촌이 자매결연을 하는 일촌일사 운동 등을 통해 도농(都農)간의 유대를 강화하고 국산 농산물의 소비를 촉진시키는 방안이 검토될 수 있다. 기업 입장에서는 사원 복지 향상에 활용할 수 있고 농촌 입장에서는 농외소득 증대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적극 고려해 볼 만하다. 다만 기업으로서는 기존 유통 관행과의 마찰을 감수하지 않을 수 없고 일정 부분 참여 기업의 비용 부담이 불가피하다는 점에서 참여 유도를 위한 인센티브 방안이 병행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와 함께 한.칠레 FTA 비준의 효과가 극대화될 수 있도록 비준 이후의 연착륙 방안에 대한 대응책을 마련하는 일도 소홀히 해서는 안 될 것이다.

박용성 대한상공회의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