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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킨리·안나프르나 봉등 등정경력"다채"|"여자라고 못 오를 산 있나요"-여성 에베레스트 원정대 지현옥 대장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6면

우리나라 여성 산악인으로서는 처음으로 세계 최고봉인 에베레스트(8천8백48m)에 도전하는 한국 여성 에베레스트 원정대 지신옥 대장(31).
여성 원정대의 도전으로는 세계 세번째로 13명의 대원을 이끌고 내년 3월「세계의 지붕」 을 정복하게 될지 대장은 올해로 등산경력 14년째의 처녀 알피니스트.
많지 않은 여성 전문산악인 중에서도 보기 드문 등반경력을 자랑하고 있는 그는 이미 한국 여성 산악인으로서는 처음으로 88년 북미 최고봉인 알래스카의 매킨리봉(6천1백km), 91년 역시 여성 처음으로 해발 7천5백46m인 중국의 무즈타가타봉 정복에 성공한 맹렬여성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또 남성 산악인들과 어깨를 겨루며 히말라야의 안나푸르나봉(8천78m), 칸첸중가봉( 8천6백3m) 등의 등정에도 참여해 타고난 역량을 인정받은 사람이다.
산에서 달구어진 다부진 몸매, 단단한 표정이 강인함을 느끼게 하는 지씨가「산사람」이 된 것은 청주에 있는 서원대 산악부에 가입하면서부터. 자신과의 싸움으로 느껴지는 산행, 자유로우면서도 질서가 잡혀있는 듯 보이는 산악부의 분위기가 미술학도(미술교육과)인 그의 마음을 사로잡았기 때문이었다.
20여명의 선·후배들과 산을 타기 시작하면서 그는 산의 마력에 깊숙이 빠져들었다. l년 중 2백일 정도를 산에 가 살 정도로 산에 미쳐 전국의 산을 뒤지고 다니면서 닥치는 대로 설벽과 암벽·암릉 등을 수없이 오르내렸다.
대학을 졸업하고 미술학원 강사를 지내면서도 산에 대한 그의 열정은 식을 줄 몰랐다. 졸업과 함께 형식적으로 산악부를 떠날 수밖에 없었지만 남자 후배들을 독려해 산타기에 매달렸다.
그의 남다른 열정은 전국의 산악인들에게 파다하게 소문이나 결국 매킨리봉 등반의 계기를 접하게 됐다.
이 등반은 20대 후반인 여성 산악인 5명이 각자 비용을 마련해 이루어진 것.
미흡한 여건으로 인해 사전에 충분한 고산적응 훈련을 할 수 없었던 지씨 등은 그러나 산소부족에서 오는 호흡곤란, 두통, 식욕 및 판단력저하 등의 고소증세를 이겨내는 악전고투 끝에 한국 여성 산악인 초유로 매킨리 등정의 개가를 올렸다.
고소증으로 인해 마지막 이틀간은 물만 먹으며 견뎌내야 했던 지씨는 해발 5천2백51m의 제8캠프를 출발, 8시간의 사투 끝에 대원 중 맨 처음으로 매킨리봉을 밟는데 성공했다. 정상 바로 밑 2백m의 절벽을 기어오를 때는 허기와 현기증이 겹쳐 몸을 가누기 힘들 정도였다는 것. 허기를 달래기 위해 음식을 먹으면 곧바로 토하기 일쑤였고 조난위기 역시 여러 번 넘겨야 했다.
10명 정도가 비스듬히 설 수 있는 매킨리봉은 당시 영하 40도의 강추위가 몰아쳐 태극기를 꽂고 불과 사진 3커트를 찍은 후 셔터가 얼어붙었을 정도. 알래스카에 위치한 매킨리봉은 북극점에서 불과 3백22km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 빙하와 눈에 덮인 산으로 한국 최초로 에베레스트를 정복한 고상돈씨가 설벽 추락으로 인해 79년 사망한 험봉이기도 하다.
『매킨리를 등정하고 나니 막연한 불안감이 사라지고 어느 산이든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는 지씨는 이것이 계기가 돼 89년에는 네팔 히말라야의 안나푸르나봉 동계등반 (대한 산악연맹 주최) 90년 가을에는 역시 히말라야의 간첸중가 등반(충북 산악연맹)에 남자대원들과 함께 참여하게 됐다.
그는 91년 8월 서원대 남자후배 6명을 이끄는 원정대장이 돼 한국인 최초로 중국 무즈타가타봉 정복의 쾌거를 이루어냈다. 「빙하의 아버지」 라고 불리는 무즈타가타봉은 온통 빙하로 뒤덮인 고봉으로 원정대는 남서면 루트를 통해 당초 예상보다 7∼10일 빨리 정상을 정복하는 개가를 올렸다. 지씨와 대원들은 정상정복 도중 부상과 동상으로 하산직후 긴급 후송돼 치료를 받기도 했다.
내년 3월로 잡혀있는 에베레스트 등반 대장의 중책을 맡은 그는 성공적인 등정을 위해 이미 10여명의 대원들과 함께 지난 4월 한 달간에 걸쳐 히말라야의 로부제(6천1백19m)와 임자체(6천1백83m)봉에서 고소 적응훈련을 끝냈다.
장도에 오를 여성 원정대 14명은 이번 등반을 마련한 한국 산악 연맹이 지난 2월 폭설 속의 설악산 등반대회에서 선발한 정예 여류 산악인들. 전국에서 올라온 여성산악인들을 대상으로 체력·지구력·등반기술·경력 등을 종합 평가해 엄선했다.
해외 고산 원정 경력은 불론 지구력과 정신력·판단력이 뛰어나 대장으로 선임된 지씨는 이번 등정을 위해 지난 11월부터 도봉동에 방을 얻고 대원 합숙 훈련에 돌입했다.
그는『여성이라서 원정대장이 못될 이유는 하나도 없다』고 잘라 말했다.
매일 오전 6시30분부터 대원들을 이끌고 체력단련을 위해 도봉산 뛰어오르기, 다양한 속도의 달리기, 수영 등 맹훈련을 하루도 쉬지 않고 계속하고 있다. 때로는 장기 등반훈련을 떠나기도 하고 도봉산·북한산·수락산등의 암벽을 타며 지구력을 배양하는데 온힘을 쏟고 있다.
또 대원들이 저마다 장비·식량·회계·수송 등의 분야를 맡아 원정에 차질이 없도록 준비에 만전을 기하도록 했다.
이들의 평균 연령은 27세, 등반경력 5∼14년의 여성들로 이번 등반을 위해 대부분 다니던 직장에 사표를 던졌다. 지씨 또한 다니던 회사(청주 중부산업)를 그만뒀다.
에베레스트 등반에서는 해발 6천7백∼6천8백마의 경사 40∼50도 설벽, 그 이후 지점에 위치한 경사 70도의 힐러리 스텝들이 그의 도전을 기다리고 있다.
『8천m이상을 올라가 본 적이 없어 과연 고산증세를 어떻게 이겨낼까가 더 큰 걱정거리』라는 그녀는 그러나 온갖 자료를 분석한 결과 해낼 수 있을 것이라는 판단이 섰고 이제 대장으로서 밀고 나갈 수밖에 도리가 없다며 다부진 각오를 펴 보였다. <고혜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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