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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연자의종가음식기행] ⑫·끝 강원도 강릉 창녕 조씨 종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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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씨종지떡은 저희 마을에서 대대로 모심기 철에 먹었던 일 바라지 떡입니다. 모판에 쓰고 남은 종자 볍씨를 빻아 호박고지.대추.밤.콩.팥.감 껍질 등과 햇쑥을 섞어 떡을 찝니다. 마지막 남은 볍씨로 버무린 떡이라 해서 씨종지떡이라고 합니다."

유네스코 세계무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강릉 단오제를 사흘 앞둔 16일. 강원도 강릉시 난곡동에 있는 창녕 조씨 집성촌을 찾았다. 경포호수가 바라보이는 산 넘어 고갯길을 굽이 돌아 들어간 오지마을이었다. 진사 이상의 벼슬을 원하지 않았던 은둔처사 조명숙(1712~72)의 종가에는 9대 종손 옥현(62)씨의 부인 최영간(60.사진(左))씨가 '서지 초가뜰'이란 한정식당을 운영하고 있었다.

웬만한 설명으로는 쉽게 찾을 수 없는 이런 곳에 음식점이 있다니 신기할 따름이었다. 하지만 시어머니 김쌍기(85.사진(右))씨의 지도 아래 만드는 이 집 음식은 특별했다. 맛에 기교를 부리지 않았고 재료도 무공해여서 소박하고 담백했다.

"강릉시에서 저희 집안에 전해오는 음식을 외부 사람들이 맛볼 수 있도록 해주면 농막을 개축해 주겠다는 제의를 해온 적이 있습니다. 집을 넓힐 수 있겠다는 욕심에서 승낙을 했지요. 하지만 돈을 받고 음식을 차려주는 일이어서 조상님께 죄송한 생각이 듭니다. 저희 가풍은 배고픈 사람에게 음식 베풀기를 최고의 선행으로 여기고 있거든요."

그래서 선택한 메뉴가 못밥이었다. 모심기 일꾼을 배불리 먹여야 풍년이 온다는 선대 어른의 지론에 따른 음식이다. 쌀밥 구경이 어려운 시대였지만 이때만은 성주 단지를 탈탈 털어서라도 쌀밥을 짓는다. 밥 위에는 삶은 통팥을 삶아 뿌려 맛을 더했다. 미역국을 반드시 곁들인다. 허리를 굽혀 하루 종일 일을 해야 하는데 혈액순환이 제대로 되지 않아 저녁때가 되면 얼굴이 붉어지면서, 다음날은 부어오른다. 이럴 때엔 혈액순환을 돕는 미역국이 제격이라는 것이다.

흰밥에 팥을 섞은 이유는 이뇨작용을 도와주는 효능 때문이란다. 선조의 예지가 엿보였다. 못밥을 담은 이동식 그릇도 지혜롭다. 밥과 국은 깨지지 않는 투가리(목기)에 담았고, 꽁치와 두부조림 등 물기 적은 음식은 떡갈나무 잎사귀에 싸서 한 사람씩 나눠줬다. 스테인리스나 플라스틱 일색인 요즘의 단체 식기보다 운치 있는 '웰빙 식판'이다.

사랑채 손님상에 올랐던 서지오약쌈은 한의서를 많이 읽었던 이 댁 조상이 개발한 음식이다. 간에 좋다는 빨간색 대추, 신장을 이롭게 한다는 푸른색 부추, 폐와 자궁에 좋다는 검은색 능이버섯, 해독제로 쓰였다는 흰색 더덕을 곰취나물에 싸서 잣소금으로 간한다. 이 쌈은 영양가 계산이 무딘 사람이 봐도 몸에 이로운 음식임을 눈치챌 수 있었다. 또 다른 특미는 포식혜. 가자미 식혜나 안동 식혜 같이 지방마다 특색을 갖춘 식혜를 맛봤지만, 이 댁의 포식혜처럼 새콤달콤하면서 비린 맛이 전혀 없는 식혜는 처음이었다. 생 엿기름이 들어가서인지 소화도 잘됐다. 명태포를 불려 다지듯 잘게 썰고 무도 잘게 나박썰기를 한다. 찹쌀고두밥을 찌고 엿기름도 곱게 갈아 고춧가루를 섞고 천일염으로 간을 해 버무린다. 오지항아리에 담아 그늘에 열흘 정도 푹 삭히면 된다.

이연자 한배달우리차문화원장(teacook@hanmail.net)

서지오약쌈

■ 서지오약쌈(4인분)

재료-대추 10알, 부추 100g, 황태 1마리, 더덕 3뿌리, 능이버섯 100g, 곰취 20장/ 잣소금-잣 50g, 참기름 1과1/2 티스푼, 소금 약간, 깨소금 약간

①황태를 찜솥에서 살짝 찐다. 그래야 껍질이 잘 벗겨진다. 뼈를 추려내고 살만 가려 면보자기에 싼다. 다듬이돌에 올려놓고 방망이로 부드럽게 두드린다. 보푸라기보다 씹히는 살이 있을 정도라야 한다. 여기에 맛과 색이 곱도록 참기름을 넣는다. 깨소금도 넣어 조물조물 무친다.

②대추는 포를 떠 씨를 발라내고 굵게 채를 썬다.

③더덕은 껍질을 벗긴 다음 헹궈 3㎝ 길이로 굵게 채를 썬다.

④능이버섯은 깨끗이 씻은 다음 끓는 물에 살짝 데친 후 굵게 채를 썬다. 참기름과 소금으로 간해 살짝 볶는다.

⑤부추는 씻은 뒤 3㎝ 길이로 썬다.

⑥곰취는 끓는 물에 데쳐 식혀둔다.

⑦한지 두 겹에 잣을 넣어 도마 위에 놓고 칼자루로 두드린다. 이렇게 해야 잣기름이 한지에 배어들고 잣도 포슬포슬 해진다. 잣에 참기름을 넣고 소금을 약간 넣어 반죽한다.

⑧곰취를 펴서 갖가지 재료에 넣어 싸먹는다.

씨종지떡

■씨종지떡

재료-멥쌀 1㎏, 찹쌀 300g, 밤 10알, 대추 15알, 삶은 팥 2컵, 쑥 300g, 곶감 5개, 호박오가리 300g, 불린 강낭콩 한 컵. 소금 조금

①멥쌀과 찹쌀은 한데 불려 방앗간에서 빻아온다.

②쑥은 씻어서 물기를 뺀다.

③밤은 껍질을 벗기고 4등분한다. 대추도 씨를 빼 4등분하고 곶감과 호박은 사방 1㎝ 정도로 썬다.

④큰 함지에 재료 모두를 넣고 버무린 다음 김이 오르는 찜통에 베보자기를 깔고 20분 정도 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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