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장관 위증 여부 부메랑 될 듯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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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경찰이 21일 '대운하 보고서'의 출처로 정부 기관을 지목해 논란이 새 국면을 맞았다. 이용섭 건설교통부 장관의 요청으로 수사에 착수한 경기경찰청은 이날 건교부와 수자원공사를 압수수색했다. 그러곤 "문제가 된 37쪽짜리 보고서는 수자원공사의 30여 쪽짜리 문건을 바탕으로 작성됐다"고 밝혔다. 당장 건교부가 곤혹스럽게 됐다.

이 장관은 18일 건교위 발언 후 "정부가 만든 보고서는 9쪽뿐"이라고 주장했다. 경찰 발표로 이 장관의 위증 논란이 불거질 게 뻔하다. 그는 21일 국회에서 "유출이든 해킹이든 (37쪽짜리 보고서 내용이 수자원공사 등 3개 기관이 구성한) 태스크포스(TF)에서 나갔다"고 한걸음 물러섰다. 정부기관의 연루 의혹을 뒤늦게 인정한 셈이다.

30여 쪽 보고서를 작성한 공무원들은 선거 중립 의무 위반 혐의에 대한 조사를 피할 수 없게 됐다. 대선 국면에서 특정 후보(한나라당 이명박 경선 후보)가 내세운 공약을 낮게 평가한 문건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경찰은 이날 건교부와 수자원공사 직원 8명의 집을 압수수색했다. 게다가 중앙선관위는 대운하 보고서 논란과 관련해 대검찰청에 수사를 의뢰했다.

청와대는 대운하 보고서의 작성을 사실상 지시한 게 아니냐는 의심을 받고 있다. 9쪽과 37쪽 보고서엔 모두 "VIP(노무현 대통령을 지칭)께서 '우리 현실에 대운하가 맞느냐'고 말씀하셨다"는 구절이 있다. 문맥상 보고서 작성의 계기라는 해석이 나올 수 있다.

현재로선 2005년 말 추병직 당시 건교부 장관이 수자원공사 등에 보낸 '1998년 운하 보고서 재검토.보완 요청' 공문이 마지막 관련 보고서 작성 지시다. 그러나 이번에 문제가 된 문건들은 모두 지난달 초 새로 작성된 것이다. 따라서 누가, 왜, 갑자기 보고서 작성을 지시했는지 명확하지 않다. 이 후보 측은 청와대를 사실상 보고서 작성 지시자로 의심하고 있다.

노 대통령은 19일 국무회의에서 "(후보들의) 주요 정책공약에 대한 타당성을 정부 연구기관들이 조사해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번 사건으로 정부 산하 연구기관들의 활동도 제한될 수 있다. 선관위는 또 서울시정개발연구원에 대해서도 검찰에 수사를 의뢰했다. 그런 만큼 이 후보 측도 이번 결정에 주목할 것으로 보인다. 시정개발연구원은 이 후보의 서울시장 재임 당시 대운하 관련 자료를 만들었다.

한편 이 후보 측 정두언 의원은 "정부의 문서 파일이 특정 캠프 모 의원한테 넘어갔으며, 그 의원이 일부 내용을 변조한 게 모 언론사로 넘어갔다"고 주장했다. 박근혜 후보 측 유승민 의원을 겨냥한 것이다. 유 의원은 보고서가 언론을 통해 공개되기 전인 지난달 말 공식 석상에서 보고서의 존재를 언급했다. 유 의원은 "당 경선관리위에 진상조사를 요청하겠다"며 "나와 정 의원 중 거짓말을 한 쪽이 의원직에서 물러나자"고 제안했다. 박 후보도 기자간담회에서 "그쪽(이 후보 쪽) 캠프는 그런 식으로 하는 게 문제다. 이런 게 바로 네거티브"라고 정 의원을 비난했다.

남궁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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