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 꺾인 미 시민의 현실포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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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격동의 60년대를 대학캠퍼스에서 함께 보냈던 친구들이 손목을 끊고 자살한 한 동기생의 장례식에 참석하기 위해 10년만에 다시 모인다. 변혁과 반전을 외치던 이들도 이제는 모두 현실이 그리 간단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는 성숙한 사회인이다. 성실한 회사원이거나 민완기자이거나 아니면 정숙한 가정주부로서 나름의 삶을 꾸려나가고 있다. 요새 말로 하자면 이들은 「회개한」운동권 청년들인 것이다.
이들중 유일하게 사회로 편입되기를 거부하고 살았던 앨릭스의 자살은 이들로 하여금 어쩔 수 없이 열정에 가득 찼던 과거를 돌아보게 만든다.
로렌스 캐스던 감독이 1983년에 만든 『위대한 탄생』(The Big Chill·대우비디오 출시)은 60년대적인 희망이 좌절되어버린 미국사회의 정신적인 공허감을 따뜻하게 그려낸 영화이다. 어떻게 하면 「재테크」를 잘할 것인가, 아니면 어떻게 특종스캔들 기사를 쓸 것인가에 골몰하는 이들의 평범한 일상은 이상주의자였던 친구의 예기치 않은 자살로 그게 동요된다. 이 동요는 이들을 「어른이 되기 위해」자신들이 잃어버린 것이 무엇이었던가에 대한 성찰로 몰고 간다. 감독 이전에 뛰어난 시나리오 작가인 캐스딘은 함축이 풍부한 다이얼로그를 통해 인물의 성격과 심리를 섬세하게 포착해낸다.
롤링 스톤스의 『원하는 것을 모두 얻을 수는 없는 법(You Can't Always Get What You Want)』등 전편을 수놓은 60년대의 로큰롤 넘버들은 순결했던 과거에 대한 깊은 노스탤지아를 적절하게 끄집어낸다.
케빈 클라인<사진>·욀리엄 허트·글렌 클로스 등 실력파 배우들의 잘 정제된 앙상블 연기 또한 이 영화의 빼어난 매력중 하나다.<임재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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