옐친 개혁정책의 “분수령”/막오른 러 인민대표대회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9면

◎신헌법 채택안되면 권력기반 상실/현내각 총사퇴 등 타협책 모색할듯
1일 개막된 제7차 러시아 인민대표대회는 보리스 옐친대통령이 추진해온 급진경제개혁정책의 향방을 좌우할 중대 분수령이 될 것으로 보인다. 정부와 최고회의(인민대에서 선출되는 상설의회)간 대리전 양상으로 계속돼온 러시아의 보혁대결 과정에서 양자 모두 이번 대회를 승부처로 인식해왔다.
옐친대통령은 이번 대회가 열릴 경우 1천68명의 인민대대의원중 70%정도를 차지하는 온건보수파(45%) 내지 강경보수파(25%) 대의원들은 개혁완화 또는 포기압력이 거세질 것을 우려,애당초 이번 대회를 연기할 속셈이었다. 그러나 그는 지난 10월 자신의 인민대연기 요청이 최고회의에 의해 전면 부결되자 인민대와 최고회의를 개혁장애세력으로 선언,이들을 무력화하기 위한 실력행사에 들어갔다. 정부측으로부터 ▲대통령이 행정·입법·사법부를 통괄하는 잠정적 직할통치설 ▲입법부 해산과 조기총선설 등이 잇따라 흘러나오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다. 그는 지난달 국민들에게 이같은 긴급조치의 불가피성을 설득하기 위해 각 지방을 순회하기도 했다.
따라서 이번 대회가 열렸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옐친대통령의 급진개혁이 오히려 상당한 후퇴를 면치 못하게 됐다고 볼 수 있다. 옐친이 이번 대회 봉쇄노력이 무산된 이후 취한 일련의 유화 제스처에서도 이같은 조짐은 확인되고 있다.
옐친대통령이 일단 현내각을 총사퇴시킨뒤 제도권과 재야를 통틀어 최대 정치세력으로 등장한 중도보수적 「시민동맹」과 연립정부를 구성할 것이며,이미 정부와 시민동맹이 공동으로 「위기대처계획」을 작성했다는 일부 언론보도 또한 개혁후퇴를 짐작케하는 대목이다. 정당연합체인 시민동맹은 정부의 급진개혁에 제동을 걸어왔다. 옐친대통령이 이처럼 막판타협 자세로 나오는 것은 보수파 주도의 인민대에서 세싸움을 벌일 처지가 아닌데다 경제 악화로 대국민 직접호소도 성공가능성이 희박하다는 결론을 내린 때문으로 보인다.
그는 또 1일로 만료되는 초헌법적 비상대권을 연장하거나 신헌법을 채택해야 하는 입장에 놓여 있으나,둘다 인민대의 승인이 없으면 불가능한 사안들이다. 비상대권은 지난해말 구소련이 붕괴되는 상황에서 「신생러시아」의 헌법이 마련될 때까지 6개월 시한부로 부여받았다가 지난 4월 제6차 인민대에서 6개월 연장됐으나 아직도 헌법이 채택되지 않은 상태다.
따라서 이번 대회에서 비상대권의 연장도 못받고 신헌법도 채택되지 못한다면 그가 권력을 행사할 기반을 완전히 상실하게 됨은 물론 러시아 자체가 그야말로 무법천지가 될 것은 뻔하다. 이 또한 옐친대통령이 독재로의 회귀를 꿈꾸지 않는한 결국 보수파와 개혁수정을 담보로 한 타협을 모색하지 않을 수 없는 또하나의 이유로 거론되고 있다.<정태수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