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꺾기」 없애기와 병행돼야(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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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재무부는 연내에 한국은행의 재할인금리를 포함해 은행 여·수신금리 등 공금리를 인하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인하폭은 0.5∼1%포인트 정도가 될 것으로 알려져 있다. 우리는 기업의 국제경쟁력이 크게 약화되고 있는 주요 요인 가운데 하나가 현재의 높은 금융부담에 있으며,따라서 여건이 조성되면 금리체계를 조정하는 것이 합당하다고 주장해 왔다. 기업의 투자의욕을 되살리고 직접 금융을 통해 산업자금을 조달할 수 있는 길을 터주기 위해서 그같은 조치는 필요한 것이다.
정부는 지금까지 많은 논란을 거듭해왔던 2단계 금리자유화조치 보다는 공금리인하 쪽으로 가닥을 잡아가면서 새로운 금융상황에 맞는 금리정책의 선택을 시도하고 있다. 그러나 정부의 조치가 시장에 동요를 주지 않고 기업에도 도움을 주는 방향으로 움직이기 위해서는 우선 중앙은행과 자금의 흐름에 대한 충분한 검토를 거쳐야 한다. 정부가 지나치게 조급해 하거나 그저 어떤 스케줄에 따라 금리인하를 단행했을 경우 빚어질지도 모를 부작용을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다.
당장 우리 눈앞에 나타난 우려는 최근에 발생한 금융사고의 여파다. 불법,또는 편법에 의한 양도성예금증서(CD)의 발행과 가짜증서의 유통 등으로 그 거래가 중단되고 신용불안은 실세금리를 다시 오름세로 돌려놓았다. 국제수지 적자는 예상했던 것보다 축소되고 물가도 안정추세를 나타내는 등 지금의 거시경제적 여건은 지표상으로 청신호다. 그런데도 연초에 20%대에 이르렀던 실세금리가 기업의 투자위축으로 여유자금이 나돌면서 한때 12%대까지 하락했다가 다시 상승하는 것은 금융사고가 몰고올 잠재된 불안의 영향을 받고 있기 때문이라고 봐야 한다.
현재 7%수준인 재할인 금리의 인하가 시중은행 등의 대출금리에 어느 정도의 영향을 줄 것인가에 대해서도 당국자간에 아직 의견조정이 되어 있지 않다. 전체 대출금 가운데 재할인금리의 혜택을 받는 금액은 10%에 지나지 않는다. 이번 상업은행 사고가 시사하는 바는 정부의 어떤 조치에도 불구하고 「꺾기」라는 형태의 강제저축이 남아있는한 실질적으로 기업이 부담하는 금리는 결코 떨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금리인하조치는 기업이 은행으로부터 돈을 빌릴때 갚아야 되는 모든 이자비용이 줄어들도록 해야 의미가 있다. 앞으로도 꺾기가 없어질 분위기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정부가 당장 눈앞에 있는 문제를 동시에 풀어나가려는 노력을 보이지 않은채 금리인하라는 형식에만 매달리면 그것은 정치권의 요구수용과 함께 대선에 앞서 증시부양에 더 신경을 쓰고 있다는 오해를 받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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