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비즈] 백화점 5평 매장서 작년 13억어치 구두 팔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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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현대백화점 신촌점의 기성화 브랜드 '소다' 매장은 5평 남짓이다. 손님이 셋 이상 오면 앉을 공간도 없는 이 작은 매장이 지난해 13억 7000만원의 매출을 올렸다. 소다의 전국 매장 중 5년 연속 1위를 차지했다. 매출 규모로 서울 시내 다섯 손가락에도 꼽히지 못하는 백화점에서 어떻게 이런 실적을 거뒀을까. 비결은 구두 영업 15년차인 이진성(35.사진) 판매과장의 '느리게 팔기' 철학이었다.

"손님이 먼저 판매직원을 찾을 때까지 기다려야 합니다." 그는 매장에 들어온 손님이 구두를 둘러볼 때, 직원을 찾을 때까진 먼저 다가가서 이것 저것 권하지 않는다. "판매직원이 유행 스타일을 권하고 손님의 생각을 자꾸 물어보면, 손님이 부담스러워서 충분히 물건을 둘러보지 않고 나갈 수 있다"는 것이다.

구두 매장 특유의 과잉 친절이나 호객 행위도 금했다. 직원들에게 머리에 무스를 바르는 등 지나치게 멋을 부리지 못하게 했다. "구두 영업사원이 잘생겨서, 재미있어서 구두를 사주던 시대는 지났어요. 설령 영업사원을 보고 구두를 산 손님이 있다 해도 집에 돌아가면 후회하겠죠."

이 과장은 대신 신발로 승부를 건다고 했다. 손님이 원하는 굽 높이와 디자인이 기성화와 정확히 일치하지 않으면 맞춤 제작을 권한다. 견적을 공장으로 보내 일주일~열흘 정도 기다려야 하기 때문에 번거롭지만, 이렇게 해야 양쪽 모두 만족할 수 있다.

그는 "우리 신발이 불편하면 그 소비자는 다시는 우리 신발을 신지 않기 때문에 손님이 만족할 수 있는 구두를 파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맞춤 구두가 약속보다 늦어지면 직접 구두를 들고 고객에게 가져다 주기도 한다.

이렇게 맞춤 제작을 경험한 고객들은 20% 이상 다시 매장을 찾는다는 것이다. 지금은 소다에서 가장 높은 연봉을 받는 영업사원이지만, 처음 입사했을 땐 야단을 많이 맞았단다. 내성적이어서 손님들에게 말을 못 건넨다는 게 이유였다. 그는 "묵묵하고 성실한 영업사원이 인정받는 시대가 와서 다행"이라고 했다. 또 그는 가장 기억에 남는 일로 '신발이 불편하다는 고객의 구두를 여섯 번이나 수선해 준 일'을 꼽았다.

임미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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