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 특검 왜 주저하는가(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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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각당의 대통령후보들이 앞다퉈 금융자율화를 선거공약으로 내걸고 있는 가운데 금융사고가 잇따라 터지고 있다. 은행들은 일부 사회주의국가까지 포함해 해외 곳곳에 영업을 확대하는 전략을 펴고 있으나,다른 한편에선 우리의 신용체제에 큰 흠을 보여주는 중대한 위험신호가 나타나고 있다. 은행이 내실은 다지지 않은채 이대로 외형확대에만 전념해도 좋은 것인가.
상업은행 명동지점장의 자살사건은 수신고를 올리기 위해 갖가지 편법을 동원한 결과 빚어진 것으로 가닥이 잡혀가고 있다. 예금을 끌어들이기 위해 사채업자들에게 별도의 추가금리를 보상해 주는 수단의 하나로 누구나 무기명으로 사고 팔 수 있는 양도성예금증서가 이용되었다. 상호신용금고 등에서 행해지고 있는 사채자금 중개역할을 각 은행 창구가 맡아서 하고 그 과정에서 재무부나 한국은행이 그토록 엄포를 놓았던 「꺾기」가 공공연히 이뤄졌다. 감독기관은 은행의 사채조성이 관행인줄 뻔히 알면서도 「꺾기엄단」만을 되풀이 강조해왔다. 실명제가 실시되지 않고 있는 현 금융체제에서 은행원들이 그같은 증서를 예금실적 올리기에 이용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은 이미 예견된 일이었다.
국내외 금융시장의 여건이 달라지면 영업의 패턴이 변화해야 하고 금융인들의 의식구조와 인적구성도 경영혁신이라는 차원에서 달라져야 한다. 그런데도 우리는 이러한 여건변화에 대한 대응과 적응에 매우 미진했다. 고금리에서 저금리 시대로 접어들고 각 금융기관들의 부실채권이 급격히 늘어갈수록 과거의 영업형태에서 빚어진 부작용들이 사고로 폭발하는 여러가지 경우를 미국이나 일본 등에서 충분히 보아왔다. 그러면서도 우리는 그것을 남의 일로만 생각하고 옛날 방식 그대로 답습해 왔다. 정보사땅 사기사건이 그렇고,또한 상호신용금고의 불법대출 사건도 그렇다.
은행지점장의 자살에 가짜 예금증서 유통까지 겹쳐 사태여하에 따라서는 금융시장 위축이 더욱 증폭될 위험을 안고있다. 금융감독기관은 수사 결과와 관계 없이 이 사건의 전말에 관해 즉각적인 특별검사에 나서 시장의 불안을 빨리 풀어주어야 한다. 상업은행의 자체검사는 변칙적인 금융업무를 될수록 감싸는데 그칠지 모른다는 일반의 우려가 깊다는 것을 새겨 들을 필요가 있다. 양도성예금증서의 위조를 막기 위해서는 수표나 회사채와 마찬가지로 정도 높은 문양과 컬러인쇄가 가능하도록 조폐공사에 제작을 의뢰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궁극적으로 금융업무는 하루 빨리 정부 중심의 규제에서 벗어나 사업성에 근거한 자율성을 갖도록 보장해주되 파괴적인 경쟁으로 빚어질 위험을 제거하기 위한 금융감독권의 강화가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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