옐친방한에 유의할 점(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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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옐친 러시아 대통령이 2박3일간의 한국방문을 위해 18일 서울에 온다. 옐친대통령은 러시아 국내가 보수파의 공격으로 심한 정치적 불안상태에 있는데도 불구하고 방한을 결행하는 것이다. 그만큼 그의 한국방문은 한·러 양국에 모두 뜻깊은 행사가 된다.
그의 방문중 「한·러 기본관계조약」이 체결되어 그동안 진전돼온 양국관계는 법적으로 제도화된다. 러시아는 이번 기회에 KAL기 격추에 관한 자료를 추가로 제공하고 유가족을 찾아가 사과의 뜻도 전하리라 한다. 이것으로 양국관계발전은 더욱 가속화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더욱 의미있는 것은 「한·러 군사의정서」가 체결된다는 사실이다. 우리에게는 적대국가였고 북한과 군사동맹을 맺고 있는 러시아와 군사협력을 법제화한다는 것은 양국관계에서는 물론 동아시아의 국제관계에서도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군사의정서엔 작전사항은 포함되지 않고 고위장교와 국방대학원생의 상호교류,군사훈련 상호참관,함정과 비행단의 상호방문 등 외교·교육적 차원의 교류가 주요 내용을 이룬다.
그러나 한·러 기본조약에서 「양국간 무력위협과 무력행사를 금지하고 모든 분쟁은 평화적으로 해결한다」는 불가침정책을 선언하고 군사의정서까지 체결한다는 것은 「조·소상호우호 원조조약」에 의해 맺어져 있는 북한과의 군사동맹을 사실상 무력화시키는 의미를 지닌 조치로 평가된다.
옐친 방한의 가장 큰 목표는 양국의 경제협력과 미집행분 경협자금의 재개에 있다. 그러나 우리로선 러시아와의 협력관계를 지속적으로 추진하면서도 총 30억달러 규모의 대CIS(독립국가연합) 경협자금중 잔여분 15억3천만달러의 집행 여부에는 신중한 판단을 해야 한다. 우리가 제공하는 차관은 자체 여유자금이 아니라 외국에서 조달해 온 것이며 CIS는 이미 집행된 차관에 대해서조차 이자지급을 연체해 왔다.
러시아가 밀린 이자를 알루미늄괴 등으로 갚겠다는 지불보증 문서를 최근에 우리정부에 제출했으나 이는 전체 CIS가 내놓아야 될 차관이자의 일부만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 옛 소련이 진 빚을 승계하고 이를 계속 지키겠다는 약속이 이행되지 않았으며 앞으로의 이행을 기대할만한 낙관적인 자료도 없다. 러시아의 경제적 잠재력은 무한하나 체제의 불안때문에 우리 기업들의 적극적인 대러시아 진출에는 한계가 있다.
옐친대통령은 서울에서 러시아의 전반적인 아시아 정책에 대해서도 선언할 방침이다. 그의 이번 방한은 오래전부터 시도돼온 「러시아의 아시아화」를 진일보시키는 계기가 될 것이다.
정부는 옐친 방한을 계기로 북한을 지나치게 고립화시키거나 전통 우방인 미국·일본,그리고 새로운 수교국가인 중국과의 관계에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유의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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