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달 받는 연금이 "젖줄"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0면

<노후 대책>
어느날 갑자기 출근할 일터가 없어지고 할 일이 없어졌을 때 퇴직자들은 그 동안 실감하지 못했던 늙음이 한꺼번에 자신을 뒤덮는 경험을 하게된다.
정년퇴직-.비단 공무원사회만의 독특한 현상은 아니지만 퇴직 때까지 신분보장이 되는 공무원들에게는 일반인에 비해 더욱 더 큰 공포가 아닐 수 없고 이 때문에 퇴직 후를 위한 「홀로서기」는 공무원들에게 절실할 수밖에 없다. 퇴직 후「홀로서기」의 준비는 대략 재취업과 소일거리의 마련, 그리고 노후생활비조달등 세가지로 모아진다.
틈틈이 공부해 박사학위·자격증을 따는 등 전문성을 키우는 경우도 많고 퇴직을 눈앞에 둔 사람들은 관련단체·유력 친지 등과의 끈끈한 관계도 마다하지 않는다.
만61세 정년을 7년여 앞둔 노동부 모 국장은 최근 5년간 지방대학의 요청까지 뿌리치지 않고 노동법·노사관계론 등을 꾸준치 강의하며 대학 진출 또는 관련단체의 특별강사를 노리고 있다. 퇴직 후에도 월수입 2백만원은 거뜬할 것이라는 생각이다.
자격증과 업무의 전문성을 살려 나름대로 경력·지식을 쌓는 경우는 노동부·환경처·국세청·관세청 등 전문부처에 많은 편이다.
노동부 10년차 이상 사무관 등은 공인노무사 자격증을 자동 취득, 퇴직 후 사무실을 차리면 월2백만∼3백만원의 수입을 쏠쏠히 올릴 수 있다며 전문성 기르기에 열을 쏟고 환경처기술직 공무원들도 각종 환경기사 자격증이 녹슬지 않도록 갈고 닦는다.
국세청·관세청 직원들은 공무원경력을 인정해 세무사·관세사 시험에서 1차 시험을 면제받을 수 있는 특혜가 얼마 전 없어진 만큼 퇴직 후를 대비해 틈틈이 책을 보며 자격증취득을 꾀하고 있다.
이밖에도 각 부처 공무원들은 퇴직 후 각 산하단체의 임원·관련업계 진출을 노려「물밑작전」도 구사한다.
또 퇴직 후 갑자기 일손을 놓지 않기 위해 나름대로 머리를 짜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서울시 모 주임은 10년 전부터 구청동기 10명과 함께 수도권근방에 야산1만평을 공동 구입해 놓고 매월 1만원씩 회비를 적립해가며 퇴직 후 과수원 일구는 꿈을 먹고산다.
보사부의 40대 후반 모 고참 사무관은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충남의 수천평 논밭을 처분하지 않고 노후의 생활터전으로 삼을 생각에 마음이 넉넉하다. 뭐니뭐니해도 90만 공무원들의 퇴직 후 생활을 보장해주는「젖줄」은 연금이다.
총무처에 따르면 81년까지만 해도 일시금으로 연금을 받는 경우가 90%가 넘었으나 최근 몇년새 일시금과 연금선택 케이스가 각기 50%정도로 상황이 크게 달라졌다.
여기에는 공무원 보수규정이 크게 바뀌어 매달 연금을 받는 편이 유리하다는 계산도 깔려있다.
30년 경력 주사와 서기관급이 퇴직 때 탈수 있는 임시금은 각 9천2백만원, 1억1천2백만원 정도. 그 대신 매달 연금은 91만∼1백10만원정도로 이 정도면 노부부가「체면유지」하며 그럭저럭 살 수 있고 본인이 사망하더라도 배우자와 l8세 이하 자녀에게 70%의 연금 수혜권 이 승계된다.
이런 매력 외에 연금을 선택하는 공무원이 늘어나는 추세인 것은 선배들의 처절한(?) 실패 경험을 많이 봐온데 따른 자구측면이 강하다.
교육부 모 고참 과장은『공무원 퇴직금은 먼저 본 사람이 임자라는 말이 있을 만큼 사업한답시고 함부로 덤벼들었다가 사기꾼의 덫에 걸려 빈털터리가 됐거나 퇴직금을 자식들에게 내놓고 노후를 궁색하게 지내는 선배들을 많이 보았다』고 말했다. <김영섭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