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12제자」 본떠 “알짜 12명씩”선발/군 사조직 「알자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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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보직추천 등 이익집단으로 변질/86년 해체령 무시… 동료에 “너희는 껍데기” 실언소동/육사33기까지 끝난 「하나회」 후신아니냐 의구심도
육사 출신으로 구성된 「알자회」란 이름의 사조직이 육군 내부에서 은밀히 움직이고 있었던 것으로 드러나 큰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3공·5공시절 군내 최대의 사조직으로 위세를 떨쳤던 「하나회」를 연상케 하는 이들에게 육군 수뇌부는 일단 강력한 제재조치를 취하고 나섰다.
김진영참모총장은 이 사조직의 즉각 해산,관련자의 보직 변경 등 엄중조치를 지시했고 군내에서도 주동자는 옷을 벗기는 등 강경조치를 요구하는 소리가 높다.
군당국은 일단 이들에게 보직 해임 등 인사상의 불이익을 주겠다는 입장은 분명히 하고 있으나 다만 전역 등 조치는 또다른 부작용을 낳을 수도 있다고 판단,신중히 대처한다는 방침이다.
「알자회」가 처음 결성된 것은 육사 34기생들이 생도 3학년 시절이었던 76년. 「육사에 동기는 있으나 서로 마음을 털어놓을 친구가 없어」 만들었다는 「알자회」는 이듬해인 77년 회원들끼리 야유회를 갔다가 「알자회」란 이름을 짓게 된다.
「예수님의 12제자」를 따서 회원은 12명으로,「서로 깊이 이해하고 잘 알고 지내자」는 뜻에서 「알자회」라고 했으나 알짜들만 모인 「알짜회」라는 뉘앙스를 은근히 풍겼다.
이 모임은 점차 조직을 확대,마침내 43기까지 가입하게 됐다. 그러나 86년 5월 이 조직의 존재를 처음 인지한 군수사당국은 이들 회원들로부터 서약서를 받고 당시 고명승사령관(육사15기) 명의로 해체 지시를 내렸다.
그후 「알자회」는 사실상 별다른 모임이나 활동없이 해체된 듯했다.
그러다가 지난 9월 육대(진해)에서 교육중이던 「알자회」회원 가운데 1명이 다른 동료에게 부지불식중에 『너희들은 껍데기야,우리가 알짜야』라고 실언하는 바람에 이들이 계속 활동중이라는 사실이 다시 드러나게 된다.
이 조직은 당초 단순한 친목으로 출발했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차차 이익집단으로 변질돼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보직을 서로 추천,인계해주는 등의 행위가 다른 동기생들에게 위화감을 조성하는 요인이 되기도 했다. 「특정 기의 경우 호남 출신은 한명도 없고 영남 출신들로만 구성돼 있다」는 소문도 이런데서 비롯됐다.
70년대 윤필용사건으로 세상에 알려진 「하나회」는 육사11기 전두환씨를 중심으로 육사33기까지 조직된 군내 최초이자 막강했던 사조직. 그러나 전씨는 대통령이 된후 81년 당시 경호실장을 통해 「하나회」를 사실상 해체시켰다. 「하나회」는 공식적으론 22,23기에서 끝났으나 33기까지 활동이 이어진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군내에선 이들이 표면적으로만 해체된 것이며 실제로는 내면적인 연결이 그 이후로도 계속되는 것이 아니냐는 의구심도 있었다. 때문에 「알자회」가 「하나회」의 위장조직이라는 소문이 나돌게 된 것이다.
「알자회」를 직접 수사했던 한 관계자는 그러나 『「하나회」와는 전혀 무관하다』고 밝히고 있다.
그는 「알자회」가 조직으로서 갖춰야 할 회칙·정관·회장·정기모임·임원 등이 전혀 없는 것으로 보아 「하나회」보다 엉성하고 관계도 없는 것같다고 말했다.
그러나 「알자회」에 가입하지 않은 다른 장교들은 「알자회」가 「하나회」와 사실상 맥을 같이하고 있으며 배후에는 분명히 「하나회」의 후원세력이 있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따라서 이들은 『이번 기회에 「알자회」에 가입된 사람들을 단순한 보직 해임 정도가 아니라 마땅히 전역조치함으로써 뿌리를 뽑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육사 38기생들은 지난달 11일 육사에서 임관 10주년 기념 동기회를 열고 이들 12명의 동기생들을 동기회에서 제명키로 결의하기도 했다.
실제로 이들 「알자회」 회원중에는 육군본부 인사운영감실·수방사·육사 훈육관 등 요직에 있는 사람도 20여명이 되는 것으로 밝혀졌다.
육군은 이들중 보직기간이 1년이상 경과한 장교들을 1차적으로 야전에 전출할 방침이다.
일부에서는 이번 사건을 군이 다시 태어나기 위한 필연적 진통으로 겸허히 받아들여야 한다는 주장도 강력히 제기되고 있다.
「알자회」가 비록 순수 친목을 목적으로 출발했다고 하나 점차 이익집단화하고 비밀 모임을 갖는 등 배타적이 되어 군내의 단합을 저해하는 위화적 요소로 비춰졌다는 것은 군의 위상에 대한 자기반성이 필요한 시점에서 현실을 크게 잘못 인식하고 있는 군의 과거지향적 습성을 드러낸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따갑다.<김준범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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