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습 여전한 추곡수매 줄다리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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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양곡기금 결손 매년 1조원 넘어/영세 소농위주 「직접보상」 바람직
정치권의 「뜨거운 감자」였던 추곡수매는 수매량은 당초 정부안보다 1백10만섬 늘린 9백60만섬,인상률은 5∼7%선에서 매듭지어질 것으로 보인다.
이번 추곡수매 결정과정을 보면 비용이나 정부의 양곡수급기능,농민의 실질적 소득보장 등 경제적 측면의 고려보다는 여느해와 마찬가지로 주먹구구식 계산에 의해 적당히 덧붙이는 식으로 이뤄졌다. 추곡수매에 따른 비용(연간 1조5천억원)을 다른데로 돌려 농어촌 구조개선을 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수십년간 계속된 「상식」을 깨는게 어려웠던 것이다.
9백60만섬이 수매된다고 볼때 전체 쌀생산량(올해 3천6백57만섬 추정)에서 수매량이 차지하는 비중은 89년(28.7%)이후 가장 높은 26.3%에 이르며 이는 최근 5년간의 평균치(21.1%)보다 높은 것이다.
이같은 수매량 조정으로 최소 2천5백여억원의 재정이 더 필요하게 됐고(7%인상의 경우 2천7백72억원 필요),이는 다른 부문에서 돌려쓸 수 밖에 없다. 더구나 농협결손분까지 포함하면 추가비용이 5천억원을 넘는다.
예산배정은 어차피 선택의 문제이므로 양곡매입에 필요한 재정지출의 증대자체는 문제삼을 것이 없다.
그러나 쌀수매가 해마다 쟁점화되고 있는 것은 재정운용뿐 아니라 정부수매가 이뤄지는 다른 농산물,나아가 임금교섭 등 각종 경제적 사안에 영향을 미치는데다 쌀 수매에서 보여주는 정부·각 당의 입장이 이들이 농업 또는 농민을 대하는 자세를 대변한다는 식의 「상징적 의미」까지 얹혀졌기 때문이다. 이같은 파급효과와 의미를 감안할 때 현재의 추곡수매에 대한 국회동의제도 자체를 문제삼을 생각은 없지만 문제는 후자의 상징적 의미에 너무 집착해 어떤 것이 실질적으로 농민에게 이득이 되느냐는 고려는 뒷전에 처져 있다는 것이다. 정부는 당초 수매량 8백50만섬(농협수매 2백50만섬 포함),수매가 5%인상안을 내면서 올해 쌀생산비가 농촌노임 상승(20%) 등을 감안해도 작년보다 3.2% 떨어진 점,민간유통기능의 확대를 위해서는 수매량의 확대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는 점을 고려하고 재정능력 등을 감안하면 상당한 정책적 고려를 한 것이라고 강조해 왔고 정부는 이같은 논리로 그동안 정치권의 수정요구를 일축,버텨왔었다.
정치권은 「농민표」라는 현실적 요인은 일단 뒤로 물려놓고 전면에는 생산비에 대한 다른 추계,국내 농업기반보호,농정실패로 인한 농민의 피해에 대한 정부책임 등을 내세워 적어도 8%인상,1천만섬 수매(민자)에서 15% 인상,1천1백만섬 수매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주장해 왔다.
추곡수매로 인한 양곡관리 결손이 해마다 1조원을 넘으면서도 이중 실제 농민에게 돌아가는 몫은 34%에 불과하며,그 조차도 영세소농보다는 중·대농에게 많이 돌아가는게 현실이다.
쌀생산기반의 보존,농민에 대한 소득지원을 위해서라면 연간 1조원이상의 재정을 쓸 수 있다는 것이 현시점에서 국민적 합의라면 이같은 재원을 영세소농 위주의 직접보상과 농어촌개발을 위한 투자재원으로 활용하는 것이 훨씬 효율적이라는 지적에 대해 정부와 국회가 보다 심각하게 논의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해마다 숫자고치기에만 매달리는 것은 본질을 외면한 태도라 아닐 할 수 없다.<박태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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