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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도시, 왜 수도권 남부에 많이 짓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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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최근 동탄 2지구가 신도시 지역으로 발표됐다. 추진 중인 지역까지 포함하면 무려 8개의 대규모 신도시가 수도권 남부 지역에 집중적으로 들어서게 된다. 조성된 70여 개 택지개발지구까지 감안하면 남부지역은 과잉 개발되고 있다. 이는 마구잡이개발(난개발) 및 균형개발 관점에서 염려되는 바가 크다.

우선 경부 축을 따라 포도 송이처럼 늘어선 신도시로 인해 수도권 남부지역은 새로운 국토 난개발 현장이 될 가능성이 크다. 계획적 개발이라 해도 인구와 기반시설 용량 간의 부조화가 일정 수준을 넘어서면 이른바 계획적 난개발은 피할 수 없다. 제2 경부선을 확충한다고 하지만, 제반 여건을 고려할 때 수도권 남부지역에서 계획된 개발 규모를 흡수할 만한 기반시설을 확보하는 것은 어려워 보인다.

국토 전체의 관점에서 보면 수도권 남부지역은 개발 유도보다는 엄격한 성장관리가 필요한 지역이다. 향후 20년 안에 서울~수원~천안~대전~행정중심복합도시를 잇는 거대한 대도시권, 이른바 메가폴리스가 형성될 것으로 예상된다. 수도권 남부지역은 이곳의 중심부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더 이상의 과잉개발은 억제돼야 한다. 개발.보존 지역을 엄격히 구분해 개발할 곳만 집약적으로 개발하는 계획적 관리가 무엇보다 필요하다.

수도권 남부지역의 과도한 개발에 따르는 또 다른 문제점은 북부지역의 상대적 박탈감이다. 북부지역은 수도권 전체 면적의 42%를 차지하고 있지만 1980년 이후 택지개발 실적은 남부지역의 40%에도 못 미친다. 수도권 내 남부지역과 북부지역 간 부익부빈익빈 현상이 가속되고 있다. 북부지역이 신도시 선정 과정에서 소외된 가장 주요한 이유는 정부의 '강남 대체 신도시' 논리 때문이다. 주택시장 안정화를 위해 신도시는 강남지역 수요를 흡수할 수 있는 적정 위치와 규모를 가져야 하는데, 이를 위해선 반드시 수도권 남부지역에 위치하고 600만 평 이상의 분당급 규모가 돼야 한다는 것이 그 논리의 핵심이다.

그러나 아무리 강남 가까운 곳에 강남 아류의 신도시를 만들어도 결코 '강남 대체 신도시'가 될 수 없다. 강남 대체 신도시는 입지.규모가 아니라 질에 의해 해결될 수 있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강남과 유사한 도시가 아니라 강남과는 완전히 차별되는 수준 높은 신도시가 제공돼야 정책 당국자들이 그렇게 갈구하던 강남 대체 효과가 가능해진다. 오늘의 강남도 강북에 대한 차별성 때문에 가능했다. 단독주택과 허름한 구멍가게, 미로 같은 뒷골목으로 상징되던 강북에 비해 대규모 아파트단지와 편리한 쇼핑센터, 질서정연한 격자형 도시구조로 차별화된 강남은 소비자들에게 새로운 유혹이었다.

그러나 소비자들의 주거 취향은 끊임없이 변한다. 오랫동안 정형화된 강남 취향에서 무언가 색다른 것을 내재적으로 요구하고 있다. 높아가는 시민들의 삶의 질에 대한 욕구를 정확히 포착해 가격.주거유형.디자인.도시구조.교통체계 등 모든 면에서 한 차원 업그레이드된 신도시가 조성될 때 비로소 '강남 대체 신도시'가 가능해진다. 상대적으로 저렴하고 풍부한 개발 가능지역, 그리고 수려한 자연경관을 많이 갖고 있는 수도권 북부지역은 이런 측면에서 오히려 기회의 땅이 될 수 있다. 수도권의 부족한 택지여건과 질 높은 주거환경에 대한 높은 수요를 고려할 때 신도시는 여전히 필요하고도 유용한 정책수단이다. 수도권에 신도시를 지속적으로 공급하되 적정 입지에 대해선 과감한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허재완 중앙대 지역계획학과 교수 대한국토·도시계획학회 부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