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병핑계 증인 출두거부/이재훈 경제부기자(국감 현장에서)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9면

여전히 미궁속에 남아있는 정보사땅 사기사건의 가닥을 조금이나마 잡아낼지 기대를 모았던 19일 오전 국회 재무위의 보험감독원 국정감사는 공전 끝에 14대국회 첫 감사거부라는 해프닝으로 끝나버렸다.
증인으로 채택된 하영기 전제일생명 사장이 이날 아침 와병을 이유로 출두를 거부하자 의원들은 하씨를 강제로 출두시키느냐 마느냐를 놓고 지리한 입씨름만 계속하다 사안을 미처 다뤄보지도 못하고 포기하기에 이른 것이다.
하씨가 출석을 못하게 된 과정도 개운치 못하지만 이에 대응하는 의원들의 태도 또한 보는이에게 실망감을 주기에 충분했다.
우선 저간의 사정을 보면 하씨의 불출석은 지극히 의도된 것이란 냄새를 풍기고 있다. 하씨는 증인으로 채택된 직후인 지난 15일 갑자기 입원했고 국감 당일에야 4주짜리 진단서를 제출했다. 9월초의 교통사고 후유증과 당뇨병 때문이라지만 지난주만 하더라도 골프치는 모습을 본 사람이 있고 국감출석 문제를 놓고 당국자들과 상의한 사실마저 있는만큼 이를 액면 그대로 믿기는 어려운 일이다.
특히 하씨가 재무위 한곳에서만 오라면 응하겠는데 여러 상임위에서 증인요청을 해와 나갈 수 없다고 밝혔다는게 민주·국민당 의원들의 주장이고 보면 하씨의 자세가 어떤지 짐작할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이 일로 국감을 공전시켜 버린 의원들의 행위도 납득하기 어렵다. 정보사땅 사기사건이 이들의 주장대로 6공 최대의 의혹사건이라면 좀더 진지하게 접근했어야 했다.
병원진단서를 불출석 사유로 인정한 과거의 선례를 들이대며 하씨의 불출석을 정당화 시키는 듯한 인상을 준 민자당 의원들이나 동행명령권을 발동하지 않으면 국감을 할 수 없다는 막무가내식 고집으로 일관한 민주당 의원들,그리고 근거에도 없는 특별위원회를 만들어 훗날 다루자는 어정쩡한 자세를 취한 국민당의원 모두가 본류에서 벗어나 이 사안을 서로간 세겨루기의 빌미로 이용한 느낌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