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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넓고 할일은 없다] 김화영의 시베리아 열차 횡단기 (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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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아침의 울란우데에 햇빛이 쏟아진다. 말쑥한 거스티니처(호텔) 거세르. 더블룸에 2천루블. 싸지 않다. 그러나 얼굴 윤곽이 부드러운 처녀들 엘레나.두에나.다리마가 카운터 뒤에서 방글방글 웃으며 우리를 맞는다. 무뚝뚝하고 삼엄한 얼굴들이 불안하게 하는 시베리아에서 이런 미소가 얼마만인가? 두에나는 영어가, 다리마는 프랑스어가 유창하다. 말이 통하고 얼굴이 친근하니 마음이 푸근하다. 더군다나 울란우데는 서울과 시차가 없다. 다음 행선지 이르쿠츠크의 앙가라 호텔로 전화. 프랑스어가 통하는 예약담당자를 상대로 나 혼자서 이것저것 물어가며 호텔 예약에 성공한 것은 처음이다. 방 하나에 54달러. 러시아에서 가장 어려운 기차표 사기와 호텔 찾기 중 한가지를 미리 해결해 놓았으니 한결 느긋하다.

점심 후 시외버스를 타고 한 반시간 거리의 유명한 민속촌 구경을 간다. 레닌 광장에서 출발한 8번 버스가 20분 남짓 되어 어떤 숲가에서 우리를 내려준다. 자기네 다차에 가는 길이라는 카프카스 출신의 중년 사내와 키 큰 소년이 같은 방향이니 따라오란다. 먼 산의 능선을 바라보며 숲을 끼고 걷는 인적 없는 길이 호젓하다. 어디쯤에선가 그들이 길 오른쪽 다차들 중 하나의 대문을 열고 안으로 사라진 뒤 우리는 한참을 더 걸어 민속촌에 도착. 몽골식의 울긋불긋한 색칠을 한 대문 앞 매표구에서 입장권을 사서 들어서니 넓은 풀밭과 소나무 숲 오솔길이 문득 고요해진다. 초원 위의 돌무덤, 동방 정교회의 녹색 돔, 동물원, 트랜스바이칼리의 전통 통나무집들, 초기 러시아 사냥꾼의 집. 그리고 무엇보다 17세기 러시아 정교회의 개혁을 거부하고 옛 전통을 지키고자 타이가(시베리아의 숲) 속으로 들어와 세상과 인연을 끊고 3백50년간을 살다가 1980년대에 서양의 인류학 탐험대에 의해 발견되었다는 신자들의 집, 그 아늑하고 밝은 실내에 놓인 재봉틀, 페치카, 문턱의 꽃 장식들에 눈을 주며 한나절을 서성인다. 마음이 차분하고 고즈넉해진다. 창문 앞에 쌓인 자작나무 장작이 비낀 오후 볕에 잘 마른다. 만사 다 접고 아예 이곳에 자리잡아 살면 어떨까 싶은 한때의 몽상.

민속촌에서 나와 길가의 하나뿐인 카페에 드니 나들이 나온 젊은 부부와 어린 소녀의 한 가족뿐. 남편이 뚱뚱하고 사람 좋아 보이는 아내와 딸을 앞에 앉혀놓고 보드카를 마시며 구성지게 기타를 친다. 고적하지만 신나고 행복한 풍경. 우리도 그 옆 테이블에서 새큼한 코리안 샐러드를 안주 삼아 보드카를 마신다. 약간 취하여 숲길을 되짚어 나오는 길에 아까 보아두었던 다차 40번지 문을 두드려 본다. 어느새 구면이 된 사내와 키 큰 소년이 반긴다. 서민들에게 다차는 별장이 아니라 주말농장 격, 허술한 나무 집과 갸름한 텃밭이 고작이지만 러시아인 77%가 이런 다차를 소유하고 거기서 일용할 야채를 자급자족한다. 나이 사십에 타다 만 오두막과 어수선한 침대, 텃밭에 선 두 그루의 살구나무가 전부인 이 낯선 홀아비와 보드카에 취하여 노래 부르는 우리. 귀에 선 러시아 민요와 "대전 발 영시 오십분"이 한데 섞이면서 시베리아의 낯선 파밭머리에 고향산천이 포개진다. 숲가의 길을 걸어 나와 작은 벤치에 앉아 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옆에 앉은 낯선 여인에게 취한 사랑을 영어.러시아어.한국어에 섞어 고백하니 여인은 멀뚱하니 건너다보며 웃기만 한다. 그녀의 얼굴이 묻는 듯하다. 사랑? 그거 먹는 건가?

강 건너 비즈니스 센터에서 이루쿠츠크 행 기차표를 예매한 다음 택시.버스를 번갈아 타며 30여분 들길을 달려 찾아간 러시아 유일의 티베트 불교사원. 한국에서 범종을 선물했다는 절의 불전에 무사한 여행을 빌며 때묻은 지폐 몇 장을 얹는다. 오후에 광고를 보고 레닌 광장 가의 오페라에서 저녁공연 관람 시도. 그러나 공연장소는 어딘가에 있는 국립극장이란다. 텅 빈 오페라 안을 헤매고 다니다가 어떤 방에서 만난 원로 퇴역가수 소피아를 따라 전차를 타고 국립극장을 찾아간다. 쾌활하고 친절하고 마당발인 그녀 덕분에 극장에 무료입장, 게다가 난데없이 부랴트 공화국 문화부 장관, 극장장, 그리고 이 나라 최고의 원로 가수 배우들을 차례로 소개받아 악수하고 귀빈석에서 공연을 관람한다. 몽골과 러시아의 민속을 섞어놓은 듯한 춤과 노래. 더러는 남진 혹은 나훈아의 목소리 같다. 때로는 희극적이고 때로는 비장하고 슬픈 노래들, 그 중에서도 한 무리의 무용수들이 연한 물빛의 대형 천을 출렁이며 바이칼호수의 물결과 그 물결에 노니는 요정들이 되어 보여주는 노래와 춤이 가슴 속에 짠한 여운을 남긴다.

공연이 끝난 후, 우리는 소피아를 저녁식사에 초대한다. 노을 붉은 저녁 길을 천천히 걸어가 당도한 넓은 중국식당. 뜨겁고 양 많은 수프.밥.쇠고기 철판볶음.물만두.맥주.보드카… 푸짐한 식사다.

러시아어.한국어.독일어.영어.브랴트어의 종잡을 수 없는 토막들이 얼큰한 완탕 속을 유쾌하게 떠다니지만 손짓과 웃음이 마음을 이어주니 충분히 즐겁다. 소피아와 그의 공연단 일행은 내가 귀국한 뒤인 지난 9월 중순 서울을 찾아와 잠실에서 공연을 했지만 그녀가 우리 집으로 걸어온 전화 속의 손짓과 미소가 빠진 토막 말들은 나를 그저 절망하게 했을 뿐이다. 잠실 공연 직후 안양으로 떠난다는 그녀를 나는 끝내 만나지 못했다.

*** 7월 2일

▶ 시베리아는 또한 유형의 땅이었다. 이르쿠츠크에는 혁명아 트루베츠코이의 집이 데카브리스트 기념관으로 운영되고 있다.[최정동 기자]

아침나절에 찾아간 역사박물관의 무섭고 우스꽝스러운 스탈린 초상을 뒤로 하고 오후 1시 이르쿠츠크행 열차에 오르다. 붉은 티셔츠 차림의 외로운 사내 하나가 맞은편 침대좌석에 앉았다가 어느 이름 모를 역에서 내린다. 역 앞길을 혼자 걸어가는 그 중년 사내의 다시는 만나지 못할 뒷모습이 쓸쓸하다. 이제 임교수와 나, 우리 두 사람뿐. 밝은 대낮 차창 밖으로 펼쳐지는 바이칼호. 그런데 이게 웬 날벼락인가? 오후 4시50분쯤, 첩보원처럼 겨드랑이 밑으로 어깨걸이에 조그만 권총을 꿰어 찬 옆방의 군인? 혹은 경찰? 두 사내가 들이닥치더니 불심검문.

창가의 테이블 위에 마시다 둔 보드카 병을 보더니 대뜸 두 팔로 X자를 만들며 "녜트!", 금지된 것을 마셨으니 벌금을 내란다. 기차 안에서 파는 것을 산 것이라 설명해도 막무가내. 종이조각에 일인당 물어야 할 벌금이 5백루블이라고 적어 보이며 우리 여권의 인적 사항을 어떤 서류의 빈칸에 기입하기 시작한다. 러시아인들이 입에 물고 사는 보드카를, 옆 칸의 러시아인들이 지금 이 순간에도 마시고 있는 보드카를 유독 우리 외국인이 마시면 벌금이라… 그 근거가 뭐냐? 그들이 무슨 알 수 없는 규정집을 펴서 어떤 조항을 손가락질한다. 궁지에 몰린 나, 무식하면 용감해지는 것인가, 제복의 사내에게 우리 여권을 보여주었으니 너희들 신분증도 좀 보자고 요구. 순순히 건네주는 신분증의 이해 못할 필기체 이름과 숫자를 나도 종이에 옮겨 적기 시작한다. 적는 게 아니라 그린다.

▶ 바이칼 호수 주변에서는 우리의 장승을 닮은 조각이 발견된다. 우리 민족이 시베리아에서 왔다는 학설의 증거가 아닐까?

특히 키릴 문자의 의자처럼 생긴 D자는 그리기도 만만치 않다. 그러자 젊은 쪽 군인이 러시아 말을 아느냐고 묻는다. 모른다. 난 그냥 흔적이라도 남기려는 것일 뿐이다. 내 말을 알아듣는지 모르는지. 갑자기 투어리스트냐, 행선지가 모스크바냐 하고 묻는다. 그렇다, 우린 모스크바로 간다. 벌써 서류에 인적사항을 기입하는 젊은 금발의 글씨가 떨리고 있다. 이윽고 저희들 둘이서 잠시 상의를 하더니 뭔가 켕기는 데가 있는지 슬며시 여권을 돌려주며 이번만은 봐준단다. 그렇지만 보드카는 녜트! 그냥 나가다 말고 아까 제 필적으로 5백루블이라고 적었던 종이를 돌려 달란다. 미수에 그친 공갈, 갈취미수의 증거 인멸? 그제서야 등에 식은 땀이 난 것이 느껴진다.

밤 10시쯤 대도시 이르쿠츠크 도착. 표트르 대제가 유라시아의 가장 강력한 교역센터로 삼았던 거점도시, 거기서 벌어들이는 돈으로 프랑스의 루이 14세의 위용을 능가하는 '네바강 가의 로마' 상트페테르부르크를 건설하고자 했던 이르쿠츠크. 이미 예약해 놓은 앙가라 호텔로 직행. 그런데 전화 통화 내용과는 달리 객실료가 바로 '어제 날짜로' 40%나 인상되었단다. 가던 날이 장날인가, 예약한 54달러 대신 80여달러. 강도가 따로 없다! 방에 들자 한 수 더 떠 곧 전화벨이 울린다. '뷰티풀 레이디'를 소개하고 싶다는 들척지근한 여자 목소리. 이른바 '인터 걸'의 공세다. 신경이 곤두선다. 일층 로비에서 무전기를 들고 서성이던 건장한 사내들이 머리에 떠오른다. 마피아?

다행스럽게도 밤 1시가 넘어서 상트페테르부르크로부터 비행기로 도착한 스물두살의 러시아 여학생 수에타. 드디어 우리는 러시아 말이 통하게 되었다.

*** 7월 3일

목요일 약간 흐림. 비싸고 어딘가 우범지대의 냄새가 나는 앙가라 호텔을 떠나 훨씬 더 낡았지만 방이 넓고 부엌이 딸려 취사가 가능한 아레나 호텔로 이동, 보드카 안주로 얼큰한 '도시락'라면을 끓여 포식하다. 수에타와 함께 우리는 앙가라 강가를 따라 끝없이 걷는다. 군데군데 물웅덩이가 진 더러운 도로. 창가에 화분이 놓인 낡은 집들.

1825년 12월 니콜라이 1세의 즉위식 날 차르를 암살하고 농노들을 해방하기 위해 거사를 획책했던 제카브리스트 사건에 연루된 일련의 귀족 장교들이 이곳으로 유형당하면서 시베리아는 처음으로 러시아 문학 속에 등장한다. 그 귀족들 중 트루베츠코이.볼콘스키와 용감하게 그들을 따라 나선 아내들, 그 꽃다운 사람들의 기념관을 고생스레 찾아간다. 안내하는 아가씨의 프랑스어가 유창하다. 기념관에는 프랑스 귀족 라발 백작의 딸 트루베츠카야가 어머니에게 받은 가구와 귀중품들, 초상화, 그들이 받아보던 1840년대의 프랑스어신문 '주르날 데 데바'지가 노랗게 바랜 채 펼쳐져 있다. 유형지에서 프랑스 신문을 구독하다? 다산과 추사의 유배시절이 머리에 그려진다.

*** 7월 4일

금요일 쾌청. 시외버스를 타고 바이칼 호반의 리스트뱐카로 향하다. 아이젠하워 대통령의 방문을 위해 급조했다는 고속도로. 별장들과 숲과 전설의 앙가라 강. 물고기가 많아 타타르어로 '풍요로운 호수'라는 뜻의 바이칼이라 불리는 맑고 푸른 호수는 오히려 광대한 민물 바다다. 훈제 오물(바이칼 호의 명물 생선)을 익히는 연기와 김이 자욱한 시장통에서 수에타가 주근깨 자욱한 소년 하나를 만나 데리고 왔다. 이름이 '로마'라고 했다. 가능성은 세 가지. 호텔.아파트.통나무 전통가옥. 로마의 안내로 채전과 야외 변소가 딸린 통나무집 한 채를 세내다. 소파 베드가 놓인 방이 둘, 페치카, 모든 취사도구가 갖추어진 부엌. 바로 집 앞이 호수다. 페치카에 자작나무 장작을 지피고 순록고기.돼지고기.닭고기 바비큐와 보드카로 식사. 이제 비로소 시베리아 여행의 참맛이 나기 시작한다.

이곳에서 우리는 마치 방학이 되어 고향에 돌아온 학생들처럼 소년 로마와 함께 동네를 어슬렁거리며 사흘을 보냈다. 우리는 마침내 바이칼 호반에서 잠시 '살았었다'.

고려대 교수 royan41@hanmail.net

*** 보드카의 취기로 마저 써야 할 여행기

그러나 독자들이여, 아직 갈 길은 멀고 할 말은 많지만 벌써 한 해가 저물어가니 이제 연재를 서둘러 마쳐야 한다. 따라서 옴스크에서 온 모델 회사의 아트 디렉터 세니아와 빅토리아 두 젊은 아가씨들과의 한때, 톰스크에서 온 '라디오 시비리' 음악방송 DJ 안나(그녀 덕분에 우리들의 이야기는 한동안 음악과 함께 전파를 타고 시베리아 하늘 어딘가를 떠돌고 있었을 것이다)와 그녀의 귀여운 딸과 함께 배를 타고 찾아간 호숫가의 버려진 철길과 터널, 느리게 날던 나비… 훈제 오물을 파는 팔등신 미녀 카치아의 이야기도 생략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며칠 밤낮을 이어 건너간 예니세이강.오브강도, 철로 연변 자작나무 숲가에서 하얗게 꽃핀 감자밭을 옆구리에 끼고 엎드려 있는 이스바(통나무 집)들을 눈으로 쓰다듬으며 수천㎞의 기차여행 끝에 도착한 러시아의 '두뇌' 노보시비르스크도, 거기서 다시 택시.합승버스를 번갈아 옮겨 타며 아름다운 도시 바르나울을 거쳐 남쪽 내륙으로 장장 5백여㎞, 마침내 당도한 알타이 공화국의 고르노 알타이스크도, 하늘을 찌르는 듯한 키 큰 소나무 숲 속 휴양지 만춰록의 방갈로에서 묵은 며칠도, 낮에는 말 타고 헤엄치고 솔 향기 사무치는 사우나 도크에서 몸을 풀고, 밤이면 숲속에서 술 마시고 노래하고 춤추다가 곯아떨어지면 키 큰 침엽수 우듬지 사이로 하늘에 자욱하던 별 떨기들이 밤새 무슨 요술을 부렸는지 소나무 아래 빨간 야생 딸기가 되어 이슬 먹은 풀숲에서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드는 아침도, 방 앞으로 세찬 물살을 일으키며 뿌옇게 흐르는 카툰 강을 따라 몇날 며칠 동안 래프팅을 하며 남으로 내려간다는 사람들의 고함소리도, 그리고 다시 5백㎞를 달려 노보시비르스크로 돌아와 기차를 타고… 우랄산맥을 넘어 모스크바까지 장장 48시간에 걸친 수천㎞의 기차여행도… 임교수도 수에타도 모두 떠나버린 모스크바에 홀로 남아 떠돌았던 나흘, 기차간에서 만났다가 헤어졌던 소년 이반, 도스토예프스키의 '백치'를 읽던 그의 여동생 마샤가 행인들의 무리 속에서 나를 알아보고 "미스터 킴!"하고 소리치며 달려오던 아르바트 거리의 꽃가게 앞, 그리고 하룻밤 꼬박 기차를 타고 꿈길을 건너가면 도시 건설 3백주년이라고 축제가 한창인 네바 강가의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이른 아침, 철학과 5학년 여학생 마리나의 안내를 받으며 주마간산 격으로 돌아본 표트르 대제의 연극무대 같은 거리와 네바 강변도, 우리 대학 졸업생 문경남.김환의 정성스러운 환대를 받으며 찾아간 에르미타주 미술관의 세잔과 마티스의 그림들, 혹은 여름 정원 숲속의 벤치에 앉아 마시던 맥주 이야기도… 모두 생략할 수밖에 없다. 한 해가 저물고 이제 더는 지면이 없다.

그러나, 독자들이여, 이 나그네의 요량 없는 용두사미의 여행담을 너무 나무라지 말라, 이제 그대들이 저 미지의 세계로 떠날 차례다. 지금쯤 시베리아에는 눈보라가 치고 있겠지. '유정'의 최석처럼 가슴속에 남정임을 품든, 카추샤를 그리든, 지바고의 연인 라라를 추억하든 그것은 그대들의 자유다. 그러나 기억하라, 시베리아 벌판에는 혹독한 추위와 눈보라만 아니라 냉동실 같은 찬바람 속에서 더욱 제 맛을 내는 보드카도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그 유쾌한 취기로 이 용 머리 여행기의 뱀 꼬리를 신나게 흔들어 보시라.

김화영 고려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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