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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덴의 동쪽, 동탄의 동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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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우리는 모두 에덴의 동쪽에 산다. 천사가 아니라면 단 한 명의 예외도 없다. 에덴동산에서 쫓겨나(혹은 스스로 뛰쳐나와) 애면글면 살아가는 존재들이다. 새로운 이상향을 건설한다고 하지만 여전히 낙원의 경계에서 맴돌 뿐이다.

'에덴의 동쪽'이란 작품을 기억하는가. 소설 원작자인 존 스타인벡보다 영화배우 제임스 딘을 먼저 떠올리게 되는 이 작품에서 아담은 고향을 떠나 캘리포니아의 비옥한 땅 샐리너스 계곡에 자리 잡는다. 아내를 위한 낙원을 만들겠다는 꿈에 부풀어. 그러나 아내는 가족을 팽개치고 도망간다. 아내의 배반으로 충격받은 아담은 좌절에 빠지고, 아들 아론과 칼은 서로 반목 질시한다. 스타인벡의 고향을 무대로 인간의 선악투쟁을 다룬 20세기 판 구약성서로 일컬어지는 작품이다.

5일 오후 신천지를 향한 아담의 기분을 차에 담고 경부고속도로에 올라섰다. 목적지는 동탄 2기 신도시 확정지. 기흥 인터체인지 요금계산소를 빠져나와 우측으로 2㎞쯤 가니 영천리(英川里)가 나타났다. 노인들의 말.

"영재들이 많이 나온다고 해서 영천리라는 이름이 붙었다는구먼."

"지금도 그런지는 모르겠는데, 박(朴)씨 성을 가진 인재들이 많대."

영천리에서 기흥 컨트리클럽 방향으로 쭉 들어가 보니 중리(中里)라는 마을이 눈에 들어왔다. 고려 충선왕 4년 스님들의 수행 도량이 생겼고, 각지에서 많은 스님이 모여 '중촌'이라 불리다가 지금의 이름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영재들의 총기가 서리고, 도를 닦은 스님들의 넉넉함이 스며든 곳. 신갈 저수지에서 발원하는 냇가 유역의 풍요로운 경작지가 즐비한 곳. 경부고속도로가 경기도 화성시 동탄면을 관통하고 있는데, 고속도로의 동쪽에 있어 '동탄의 동쪽'으로 불리는 지역이다.

하지만 신도시 탄생 때마다 늘 그랬듯이 이번에도 말이 많다. 분당급이다 보니 사업비(14조원 예상)나 토지보상비(6조원 예상)가 최고 수준이다. 소문이 퍼져 매물은 일찌감치 자취를 감췄고 땅값은 오를 대로 올랐다. 보상을 톡톡히 받아내려는 깡통공장(빈 건물)도 우후죽순처럼 생겼다. 보상비는 다시 땅 투기 자금으로 사용돼 다른 지역 땅값을 올릴 테고. 이 와중에 국세청은 투기범들을 잡겠다고 혈안이 돼 있다.

동탄 아래쪽으로 더 내려가 봤다. 동탄 1, 2기 신도시 접점에 있는 금곡리(金谷里). 한 주민은 무척 화가 난 표정이다.

"아 글쎄, 우리 마을만 신도시에서 쏙 빠졌지 뭡니까."

금곡리란 이름은 금이 많이 나오거나 명당이라는 설이 있어 붙여졌다고 한다. 그러나 신도시에서 제외된 것을 보면 꼭 그렇지만은 않은 모양이다. 그런데 다른 남자가 이렇게 말한다.

"차라리 잘됐지. 호들갑 떨 일도 없을 테고. 우리끼리 살기 좋은 마을을 꾸미면 되는 거 아냐?"

그러고 보니 좀 전의 생각을 정정해야겠다. 마을 이름에 얽힌 유래가 들어맞는 것 같다고. 비록 신도시에서 빠지긴 했지만 신도시 후광 효과도 맛보면서 그다지 난리 피울 일도 없을 테니.

빠지면 빠졌다고 아우성, 포함되면 보상받겠다고 난리. 강남 대체효과도 없고 투기만 부추기는 수도권 신도시 난립은 이제 접자. 수도권 전체를 신도시로 만들 일 있는가. 현 정부에선 더 이상의 신도시는 없다고 한다. 그러나 차기, 차차기 정부에서도 수도권 신도시 추가는 생각도 말자. 어차피 우리는 모두 지상낙원이 아닌, 에덴의 동쪽에 산다. '동탄의 동쪽'(신도시)도 결국은 에덴의 동쪽이요, 동탄의 동쪽에서 벗어난 '금곡리'(비신도시) 역시 에덴의 동쪽이다.

정선구 경제부문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