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여균열」에 미소짓는 DJ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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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대선전략 손질… 적극적 유화 제스처/“9·18선언 기대속 진의 주시하겠다”
민주당의 김대중대표는 요즈음 애써 웃음을 감추려는 듯하다.
김영삼민자당총재의 「대담한 개각」 요구의 과수에 따른 노태우대통령의 중립선거 내각구성 및 민자당탈당,그 여파로 박태준민자당최고위원의 선거대책위원장 고사 등 「범여권」의 균열현상이 이곳저곳에서 날마다 새롭게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군의 중립화가 한층 확실해진데다가 이상연 안기부장은 안기부의 정치적 중립을 지시했고 내무부는 공무원의 선거엄정중립 지침을 시달했다.
심지어 재계까지 깨끗한 정치를 요구하면서 실명제실시를 외치는 등 유리한 선거환경이 김 대표 자신에게 조성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김 대표는 5일 저녁 청와대에서 노 대통령을 2시간여 이상 만난후 동교동 자택에 귀가해서도 기다리던 기자들에게 『9·18 결단에 대해 잘한 일이라고 지지하고,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중립내각을 만들어 공명선거를 진행하면 적극 도와드리겠다고 얘기했다』고 담담한 표정으로 설명했다.
그리고 『진지하고 따뜻한 분위기에서 대화를 나눴다』고 덧붙이면서 표정관리에 신경쓰는 듯했다.
김 대표가 가장 궁금하게 타진한 것으로 보이는 「노 대통령의 9·18선언 진의」가 믿을만한 것이냐는 물음에 『그렇게 생각한다』고 차분하게 얘기했다. 두사람 모두 구체적인 회담내용을 발표하지 않기로 했기 때문에 그의 표정에 시선이 쏠렸지만 이런 발언에 어울리는 시원스런 웃음은 없었다.
그는 곧바로 안방에 들어가 좋아하는 TV드라마 『형』을 보는 여유로 궁금증을 대체하려는듯 했다.
그의 소감중에 관심가는 대목은 『노 대통령의 결정과(그것을) 진행시키는 것을(중립내각구성,선거공정) 주목,잘해나갈 것을 기대하면서 주시하겠다』는 것.
「기대와 주시」는 민자당출현이전 여소야대 시절 그가 평민당 총재로 민정당총재인 노 대통령과 회동후 「조심스런 제휴관계」를 얘기할 때 쓰던 표현으로 이날 회동의의미를 시사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가 공명선거 보장책으로 금권선거 방지문제를 거론했다고 했는데 이는 노 대통령이 김영삼총재에게 자금지원을 끊었는지를 우회적으로 탐색해 보려는 의도도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김 대표의 핵심참모는 『정국관리의 조정자로서 위치를 즐기려는 노 대통령은 특별히 김 대표를 환대하지는 않았을 것이나,바로 그같은 노 대통령의 등거리 자세를 분명히 김 대표가 확인했다면 그 자체가 소득』이라고 했다.
이날 회담에서 김 대표가 선거중립을 전제로 노 대통령의 국정운영과 관련한 「협조 카드」를 어느 수준에서 제시했는지는 확인되지 않고 있으나 대선이 2개월여 밖에 안남았다는 시점에서 볼때 「과감한」 내용일 것이라는게 일반적 분석이다.
김 대표는 이같이 바깥으로 조성되는 유리한 국면을 보다 분명하게 발전시키기 위해 그야말로 「과감한」 배려를 노 대통령에게 하는 유화제스처를 감추지 않고 있다.
그속에는 이상연안기부장의 유임협조에 탄력적인 것도 있다. 노 대통령이 안기부장을 꼭 유임시킬지는 미지수나 김 대표의 그런 자세는 노 대통령의 9·18선언에 대응하는 방향으로 주변에서는 보고 있다.
특히 그는 노 대통령이 골치아파해온 자치단체장선거를 내년 상반기로 미룰 수 있다는 의사까지 갖고있는 것으로 고위 핵심측근이 전했고 노 대통령에게 이런 입장을 표명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김 대표가 「기대」에 비중을 두면서 이처럼 파격적으로 나아가는 자세는 박태준최고위원이 김영삼총재를 돕는데 직접 나서지 않으려는 상황전개 등 그에게 유리한 환경이 계속 조성되고 있기 때문임은 물론이다.
따라서 김 대표는 이런 좋은 환경을 의심과 경계의 회의적이고 소극적 자세로 대응하다가 일을 그르쳐서는 안된다는 판단을 하고 매우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방향을 세운 것으로 알려졌다.
김 대표는 당내의 경계론에도 일리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노 대통령이 민자당 경선당시와 같은 왜곡시비를 처음부터 일으키지 못하도록 몰고가는게 득책이라고 보는 듯하다.
김 대표는 그 기조에서 대선전략을 전면 수정하고 대응해 가면서 여론의 역풍을 받을 수 있는 것은 서둘러 적극 해명하는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측근들조차 『과거 국민에게 비쳐졌던 김대중상과는 전혀 다른 새 모습의 김 대표 모습을 보는 느낌』이라고 실토할 정도다.
측근들은 김 대표가 요즘들어 매우 여유있는 자세를 보이고 있다고 전했다.
김 대표는 「범여권」의 균열과 이완을 조성하는 쪽으로 몰고가되 극단적으로 그들을 추궁해 그들이 강하게 반발하는 국면을 피하려고 애쓰고 있다.
「범여권」의 중립성을 담보하기만 해도 김 대표는 집권가능성이 어느 때보다도 높다고 보고있기 때문에 극단을 배격하는 것이라고 측근들은 분석하고 있다.
김 대표는 이같은 외적 환경이 한껏 유리한 국면으로 조성되고 있는 시점에 터진 간첩사건에 자신의 비서가 관련된 것이 대선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에 대해 다소 숙고하는 듯하다. 김 대표는 그래서 그 사건이 표면화했을때 서둘러 사과하는 등 피해를 최소화하는 선에서 매듭지으려 했다.
김 대표는 결국 『악재만 피하면 정말 해볼만 하다』는 관점에서 표정관리까지 하면서 과수 또는 악재발생을 경계하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박보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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