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경화 사경 서울대생 돕기/미화원들이 나섰다/관악미화녹지회 회원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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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52명이 뜻모아 「자선구두닦기」/시민 2천여명 호응… 3백21만원 모금/투병넉달째… 수술비 1억원 없어 막막/“작은 정성 밑거름돼 큰 온정들 몰렸으면”
『우리도 어렵지만 장래가 구만리 같은 학생을 수술비 때문에 숨지게 해선 안된다는 절박한 마음에서 작은 보탬이 되고자 오늘 하루 봉사하기로 했습니다.』
서울대병원에서 넉달째 간경화로 사경을 헤매고 있는 한 대학생을 돕기 위해 서울 관악구 미화원 모임인 관악미화녹지회(회장 곽중호·37) 회원들이 2일 「일일 자선 구두닦기」 운동을 벌였다.
이들은 지난달 중순 관악미화녹지회 정기모임에서 서울대 신문학과 3년 유성환군(23·서울 봉천7동)이 간이식수술에 드는 1억원의 수술 비용을 마련하지 못해 애태우고 있다는 소식을 전해듣고 유군을 돕기 위해 팔을 걷어붙였다.
서울대 근처에서 구두를 닦던 한 미화원이 우연히 『신문학과 학생들이 「유성환군 살리기 대책위원회」까지 구성했다』는 이야기를 한 학생으로부터 듣곤 「무언가 해보자」고 뜻을 모으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중학교 3학년때인 84년부터 간질환을 앓기 시작,정기적인 투약과 건강관리로 그럭저럭 건강을 유지해온 유군은 지난해 군복무중 과로로 상태가 급격히 악화됐고 급기야 지난 5월 학교에서 정신을 잃고 쓰러져 간경화 진단을 받고 목숨을 건 투병생활에 들어갔다.
봉천동 지하 셋방에서 야채 노점상을 하는 홀어머니(49)를 모시고 학비를 스스로 벌어 학교에 다니던 유군의 가정형편으론 1억원의 수술비용을 마련한다는 것은 꿈같은 일이었다.
어머니는 유군을 돌보느라 매일 나서던 노점행상까지 중단해 생계를 잇는 일조차 어려운 상태다.
『우리의 작은 정성이 뜻있는 독지가와 많은 사람에게 알려져 유군의 치료비가 하루빨리 모아지길 바라는 마음이 간절해요.』
30년째 구두를 닦아왔다는 이용섭씨(72·서울 신림본동)는 손자같은 유군이 하루빨리 완쾌돼 학교로 되돌아가기를 바란다며 눈물을 글썽거렸다.
이날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관악미화녹지회원 52명이 관악구 45곳의 구두닦기 노점에 유군을 살리자는 내용의 서투른 글씨 플래카드를 내걸고 땀을 뻘뻘 흘리며 벌인 모금운동에 호응해온 시민들은 줄잡아 2천여명이나 됐고 3백21만여원이 모아졌다.
구두한켤레 닦고 2천원 내는 학생도 있었고 1만원짜리 내놓고 거스름돈을 사양하는 시민도 있었다.
『우리의 역할은 1억원이나 되는 유군의 치료비 마련보다 손님·시민들에게 유군의 어려움을 알리는 작은 일입니다.』
가정형편이 넉넉지 못해 11세때부터 구두를 닦아왔다는 회장 곽씨는 『오늘 하룻동안의 봉사가 유군에게 꿈과 희망을 줄 수 있는 밑거름이 될 것으로 생각돼 또 한차례 자선구두닦기운동을 벌여 성금을 전달하기로 했다』고 말했다.<김동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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