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기고] 군자리에서 오거스타까지 36. 김형욱 중정부장 <3>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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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욱 부장에게 골프 레슨을 한 김성윤 프로. 2005년 별세했다.

김형욱 중앙정보부장을 생각하면 떠오르는 골퍼가 있다. 2005년 세상을 떠난 김성윤 프로다.

앞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김 부장은 중앙정보부 안에 실내연습장을 만들었고, 그 곳에서 김성윤 프로에게 레슨을 받았다.

김 프로는 한국프로골프협회 창립멤버 12인 중 한 명으로 회원번호가 8번이다. 동생들도 골프를 했다. 김 부장은 골프 스승인 김 프로에게 중앙정보부 촉탁사원증까지 만들어줬다. 중정을 자유롭게 출입할 수 있도록 한 것은 물론이고 신분까지 보장해준 것이다.

그런데 그게 화근이었다.

어느 날 아침 김 프로 집에서 전화가 왔다. 그의 집은 서울컨트리클럽 8번 티잉그라운드 뒤쪽에 있었다. 클럽하우스에서 2km 정도 떨어졌다.

새벽에 지프가 와서 그를 태우고 갔다는 것이었다. 중정 요원들이 "잠시 조사할 게 있으니 함께 가야겠다"며 잠옷 차림의 김 프로를 끌고갔다는 얘기였다. 김 프로의 동생들은 "어디로 갔는지 모르겠지만 큰 문제가 생긴 것 같다"고 말했다.

서울컨트리클럽에선 난리가 났다. 연덕춘 선생, 박명출 선배 등이 김 프로의 소재를 찾기 위해 백방으로 뛰어다녔다. 나는 알고 지내던 김경옥 중앙정보부 6국장을 찾아갔다. 사정을 이야기했더니 김 국장은 어디로 알아본 뒤 "내 손이 미치지 못하는 데다"라고 했다.

사나흘 뒤 김 프로가 집으로 돌아왔다. 그는 "바람 쐬고 왔다"고만 했다. 다른 이야기는 전혀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허리와 폐 등에 생긴 심한 상처로 입원해야 했다.

나중에 알려진 이야기로는 김 프로가 중정 요원들과의 술자리에서 "내가 부장에게 골프를 가르치는데"라며 술김에 위세를 부렸다는 것이다. 그러자 "김성윤이 유언비어를 퍼뜨리고 김 부장의 이름을 팔고 다닌다"는 중정 요원들의 보고를 받은 김 부장이 "김성윤을 혼내줘라"고 지시했다고 한다.

김 프로가 중앙정보부로 연행됐던 것은 분명하다. 국회의원이든 장관이든 정권에 밉보이면 쥐도 새도 모르게 어디론가 끌려가 죽도록 매를 맞고 나오던 시절이었다.

김 프로는 '서울CC 근처에 얼씬도 하지 않는다'는 각서를 쓰고 1년간 골프장을 출입하지 못했다. 나중에 김종필씨의 중재로 다시 출입할 수 있었다. 그 뒤부터 김 프로는 선수 생활을 그만둬야 했다. 나보다 한 살 적은 그는 죽을 고비도 몇 차례 넘기며 엄청난 고생만 하다가 2년 전 저세상으로 떠났다. 나와 같은 동네에서 살았던 김 프로는 지금 생각해도 아까운 사람이다. 김 부장은 프로골퍼들에게 잘해주기도 했지만 유망한 프로였던 김성윤의 선수 생명을 끊었다. 그래도 골프 스승인데. 김 부장이 너무 심하지 않았나 싶다.

한장상 KPGA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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