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시들(분수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지도를 펴 보라/지금 우리들의 행진이/북위 몇도의 지점에 있는지.』
오산은 27년전 중앙일보 창간호 지면의 축시에서 그 시절을 「좁고,어둡고,소란스러운 골목길」에 비유했다. 그러나 그 「비린내조차 풍기는,숨막히는 골목길」에서 고고의 성을 낸 한 신문의 탄생이 한줄기 눈부신 빛살임을 축복했다.
『아! 저기 돈짝만한 구멍이 뚫렸구나/좁은 성문이 햇살을 받아 훤하다.』 오산은 그 성 문턱을 넘어서기만 하면 「통일에의,자유에의,민주주의에의 큰 길이 맞물릴 것」이라고 읊었다. 통일에의 염원이 얼마나 간절한 시절이었던가.
그 후 5년. 「우리 모두다,백록처럼 살련다」고 노래한 월탄의 시는 더욱 간절하다.
『백두산이/아버지의 모습이라면/한라 당신은/어머니의 성자/…오늘,길이 막혀 못찾는 백두산성을/저만치 멀리 바라보며/어머니 무릎에 몸부림 쳐 웁니다.』(중앙일보 창간 5주년 축시에서). 그러나 월탄은 한라의 모성을 통해 신문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했다.
10년뒤에 부른 이산(김광섭)의 「노송에의 송가」는 자못 비장하다.
『작은 씨앗이지만/큰 삶을 지녀서 바람에 날리지 않고/따스한 흙에 내려앉은/한 그루 뿌리 깊은 소나무.』(창간 10주년 축시에서). 이산은 신문도,위정자도 천년노송의 큰 꿈을 간직한채 의연하라고 채찍질했다.
『누가 난을 일러/부드럽다고 하였던가/누가 붓을 두고/문약이라 말하였던가』(창간 20주년 축시)라고 읊은 정완영 시조시인은 5공출범 당시의 「붓」보다 센 「칼」의 위력을 역설적으로 노래했다.
그러나 구소련이 무너지고 정부의 북방정책이 한창이던 시절 김광림시인은 「끊어진 모든 것을 잇자」고 부르짖었다.
『압록강 철교/너도 끊어진채 있구나/푸른 물굽이는 여전한데/40년동안 잘린채/잔해만 앙상한 너/우리의 아픔만 더해주느냐.』(창간 25주년 축시). 이제 끊어진 철교도,대화도 한핏줄로 이어야 할 때임을 강조한 그의 시는 하나의 절규였다.
22일은 중앙일보 창간 27주년. 이들 축시는 「내일에의 희망과 용기를 갖도록 고취한다」는 본지의 사시가 갖는 의미를 다시금 우리에게 일깨워주고 있다.<손기상논설위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