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방4섬 “반환불가”여론에 굴복/옐친대통령 방일·방한 왜 연기됐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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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러,보수세력 영향력 커져/한국 북방 외교에도 차질
보리스 옐친 러시아대통령의 예기치 않은 방한·방일취소는 한일 양국정부에는 최악의 시나리오가 현실화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과 일본은 지난 6월부터 모스크바에서 형성되기 시작한 민족주의 및 보수적 기류에 촉각을 곤두세우면서 옐친대통령의 방한·방일이 취소되지 않을까 우려해왔다.
특히 한국측은 방한연기나 취소의 특별한 이유가 양국간에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일본방문 취소에 자동적으로 한국방문이 연계되는 사태가 발생하지 않도록 각별한 노력을 기울여 왔었다.
그러나 결과는 일본과의 영토문제를 둘러싼 협상이 원만히 해결될 가능성이 없기 때문에 일본방문이 취소되기에 이르렀다.
러시아언론에 지난 6월부터 쿠릴열도 남단의 4개섬문제가 러시아와 일본간 관계개선의 장애물로 계속 남아서는 안된다는 친일파 정부인사들의 발언이 계속 보도되면서부터 옐친의 방일 취소문제가 거론되기 시작했다.
정부의 개혁정책에 반기를 들면서 「옐친­가이다르」정부의 사퇴를 주장해오던 보수세력이 강력하게 「반환불가」를 외치고 나선 것이다.
일본과의 경제협력을 강조해온 세력은 정부내의 각종 공식·비공식회의 석상에서 반환불가론을 주장하는 민족주의 계열로부터 심한 공박을 받기 시작했다.
군부와 보수파는 물론 대다수 국민들로부터 북방도서를 일본에 넘겨주어서는 안된다는 강력한 압력을 받게된 러시아정부는 일본측이 4개섬 반환과 러시아에 대한 경제문제를 연계,「영토문제 해결없는한 원조불가」라는 강경입장을 고수함으로써 결국 통상적 외교관례마저 깨뜨리면서 방일·방한취소를 전격적으로 결정하게 된 것이다.
옐친의 방일취소는 경제원조 획득이 어렵고 일본에 영토문제로 끌려가지 않겠다는 확고한 의지표명과 함께 앞으로 러시아 민족주의 의식이 또다시 불타오르는데 기름을 붓는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한편 옐친의 방한연기로 인해 한­러 양국 정상회담을 통해 일거에 성사시키려고 했던 주요 현안들이 유보됨으로써 한국정부의 북방외교도 차질을 빚게 됐다.
양국간 기본관계 조약 서명·남북한 관계·경제협력·북한의 핵 등 광범위한 문제들에 관한 양국간 토의와 합의가 지연돼 두나라의 관계심화 계획이 당분간 늦춰지게 됐다.
그러나 아시아­태평양지역 경제블록에의 진출을 모색해온 러시아정부가 일본과의 관계악화로 인해 앞으로 한국을 보다 중시하게 될 것이라는게 국제문제 전문가들의 일반적인 전망이다.<모스크바=김석환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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